성녀 클라라 동정 기념일.(연중 18주간 금요일)신명 4,32-40;마태 16,24-28
어떤 스승이 말라비틀어진 나무를 심더니 말합니다. ‘날마다 이 나무에 한 동이씩 물을 주어라’ 그 곳은 사막이었습니다. 샘은 너무 멀리 있습니다. 제자는 저녁에 물을 기르러 갔다가 새벽에야 돌아오곤 했습니다. 그렇게 3년이 흐르자, 나무는 싹을 틔우고 곧이어 열매도 달립니다. 스승이 제자들을 부르며 말합니다. ‘자~여기 순명의 열매를 맛보시게나’... 그렇다면 여러분께서는 주님의 가르침을 어느 정도까지 매달리고 계십니까? 열매를 맺기를 원하신다면, 먼저 진리에 복종하는 자세가 필요한데요. 만해 한용운의 시 ‘복종’ 에도 보면 ‘남들은 자유를 사랑한다 하지만 나는 복종을 좋아해요. 복종하고 싶은데 복종하는 것은 아름다운 자유보다 달콤합니다. 그것이 나의 행복입니다’ 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복종의 필요성’을 알아야 하겠는데요.
수능이 100일도 남지 않았습니다. 대다수가 공부하는 이유가 ‘시험에 잘 통과하기 위해서’ 라면, 안타깝게도 공부하는 이유를 모르는 사람이라 하겠습니다. 공부란 1차적으로 남이 알려주는 지식을 습득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자기’를 내세우면 안되지요. 남이 알려주는 것을 다 받아들이겠다는 정신이 필요합니다. 즉 ‘복종은 진리를 받아들이겠다는 순명이 되고요. 반대로 복종을 거부하겠다는 말은 진리의 대상을 놓치겠다’ 는 말과 같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공부를 잘하려면 ‘집중’ 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집중보다 선행되어야 할 자세는 ‘공부의 규율과 진리의 규율에 복종하겠다는 자세’ 가 필요한데요. 과연 이런 자세가 그저 공부에만 해당되는 것일까요?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의 자세란, 진리를 받아들이겠다는 자세에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오늘 독서에서 모세가 말합니다. “하느님의 소리를 듣고도 너희처럼 살아남은 백성이 있느냐? 한 민족을 다른 민족 가운데서 데려오려고 애쓴 신이 있느냐?” 여러분은 여러분의 인생을 여기까지 이끌어주신 하느님을 잘 기억하고 계십니까? 그 기억이, 그 받아들임이 우리를 살리는데요. 이 복종은 참된 진리와 교감하기 위한 필수조건입니다. 그래서 복음에도 말씀하시잖습니까?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하지만 대다수가 이런 복종의 자세보다는 당장 자기가 죽는 문제를 더 크게 여기기에 큰 열매를 맺지 못하는데요.
오늘 성녀 클라라 기념일입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의 강론에 감화를 받아, 귀족가문의 처자가 자기 인생을 바꾸어 수도자가 되고, 수도회까지 설립합니다. 하느님이 보여주신 것들이 자신의 인생을 바꿀만한 가치를 보았기 때문인데요. 오늘 화답송 후렴처럼 “저는 주님 업적을 생각하나이다.” 그분의 업적을 바라보며, 참 진리의 열매를 얻기 위해서는 먼저 순명할 줄 아는 자세부터 가져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