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21주간 토요일.

2017. 9. 1. 오후 11:3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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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21주간 토요일. 1데살 4,9-11; 마태 25,14-30

  이번에 새로운 신부님도 부임하셨습니다만, 우리가 사람을 보는 방식이 있지요. 남들이 말하는 풍문으로 떠도는 이야기나 소문, 또는 그 사람과 얘기했다는 사람들의 증언 등을 가지고 평판이 떠돕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옳고 그른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람을 직접 만나보고 겪은 것이 아니라, 겪었다고 남이 들려주는 말을 가지고 평가한다는 점인데요. 그러기에 우린 자기 방식대로 사람을 보기 때문에 실수할 때가 참 많습니다.

  오늘 복음에도 그렇습니다. 각자의 달란트를 받은 것을 통하여 더 벌었음을 주인에게 자랑스럽게 얘기합니다만, 한 달란트를 받은 이는 이렇게 말합니다. 주인님, 저는 주인님께서 모진 분이어서, 심지 않은 데에서 거두시고 뿌리지 않은 데에서 모으신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두려워하면서 말하지요. 보십시오. 주인님의 것을 도로 받으십시오.” 저는 이런 사태를 보면서 이런 것이 떠올려집니다. 우리가 한 사람을 보는 데에도 오해를 하곤 하는데, 하느님을 만나면서 또 얼마나 많은 오해를 할까? 하는 생각입니다.

  제가 예비자 교리를 하면서 하는 것이 있습니다. 예비자들을 만나면서 본 것이 있는데요. 다들 하느님, 예수님이란 분을, 나름의 잣대와 시각을 가지고 교회에 찾아온다는 점입니다. 물론 그런 면도 좋습니다만, 저는 그러면서 설명하지요. 여러분이 알고 있는 수준의 정도가 하느님의 전부는 아니랍니다.라는 이야기를 합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에 대한 설명이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른바 부정신학이라 하는데요. 이것은 동방정교회에서 하는 가르침의 방식인데요. 보통의 가톨릭은 이러이러한 분이 하느님이십니다.’ 라고 가르치지만, 동방 정교회 방식은 이렇습니다. 이러저러한 분이 아니시다.’ 라고요. 이것은 사람들이 알고자 연구해왔던 하느님을, 다시 바라보는 방식입니다. 마치 그동안 여러 덧칠을 하며 보아왔던 하느님을, 이제는 하나씩 벗겨보면서, 나중에는 하느님의 본질에 보다 가까이 접근하는 방식이 부정신학의 방식인데요. 한 달란트를 받은 사람도 그러했을 것입니다. 자기만의 방식으로 하느님을 보아왔기에 오해했던 셈인데요.

  그러기에 독서 말씀처럼 우리가 여러분에게 지시한대로 조용히 살도록 힘쓰며 자기 일에 전념하라는 가르침처럼, 평소 자신의 일을 꾸준히 하며 하느님을 바라본다면, 자기 시각에만 사로잡히지 않는, 예전보다 점점 나아져 가는, 발전된 하느님관과 세상관을 가지고 살아 갈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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