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27주간 목요일. 말라 3,13-20;루카 11,5-13
간만에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사실 신부나 수녀로 살면 잘 알아채지 못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 중 하나는 ‘나도 나이를 먹는다.’ 는 너무나 당연한 사실을 알아채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여기에 그럴듯한 이유가 있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자기가 나이드는 것을 아는 기회가 생깁니다. 예를 들자면, ‘남자라면 승진을 하며 직급이 올라가고요. 거기에 따른 봉급이 달라지거나 챙길 후배들이 많아짐을 압니다. 여성들은 아이가 크는 것을 보면서, 학년이 올라갈수록 본인이 챙겨야 할 것도 달라짐을 발견합니다.’ 헌데 저 같은 사람들은 그것을 예민하게 알아채기 힘듭니다. ‘나이는 들지만 애가 없기에, 본인이 여전히 젊다고 여기고요. 후배신부가 생긴다지만, 본당은 많아야 2-3명의 신부와 살기에, 현실감 있게 와 닿지 않습니다. 제가 승진을 하여 달라지는 삶도 아니기에, 매번 비슷하게 여기고요. 본당을 옮겨 다닌다고는 하지만, 하는 일은 비슷하기에 쉽게 알아채지 못합니다.’ 여기서 저는 이런 점을 알게 됩니다. 매번 비슷한 것의 연속이었기에, ‘애절한.. 간절함이 어린 기도가 그다지 많이 나오지 않았었구나...’ 라는 사실을요.
어쩌면 저의 이런 모습을 부러워하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교회라는 울타리가 저를 보호해준다는 사실을 부인하진 않겠습니다. 하지만 ‘애절함이 없는 신앙인’ 은 그야말로 껍데기의 삶인데요. 왜냐하면 예수님은 겟세마니 동산에서 당신의 앞날의 선택을 위해 치열하게 기도하고, 피와 땀을 흘리시며 보내셨기에 참다운 당신을 만나는 기회가 열렸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오늘 이런 말씀이 나오지요.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어떤 분들은 이런 행복을 찾습니다. ‘고만고만한 삶, 걱정 없는 삶, 괜히 힘쓰지 않아도 얻어지는 삶...’ 하지만 그런 삶은 없지요. 그런 삶을 원하는 사람은 1독서에 나온 “만군의 주님의 명령을 지킨다고, 그분 앞에서 슬프게 걷는다고 무슨 이득이 있느냐?” 하며 교만에 젖게 됩니다. 여기에 내가 바라는 것이 과연 정당하고 올바른지를 알기 위하여 청하고, 찾고, 두드리면서 치열하게 답을 찾을 때, 올렸던 지향의 ‘기도의 열매’ 가 얼마나 달콤한 지를 헤아릴 때 참으로 기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