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크리소스 토모 주교학자 기념일. 연중 23 주간 수요일. 콜로새서 3,1-11; 루카 6.20-26.
어떤 신부님이 새롭게 성당에 부임해 오셨답니다. 많은 신자들과 가정방문도 한 후 몇 달 가량이 지났을 때였습니다. 그런데 그때부터 신부님의 강론이 달라졌습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매일 매일의 강론이 똑같았답니다. 어제도, 오늘도, 그 다음 날도 2주간을 복음의 내용과 아무 관계없이 똑같은 내용만을 토씨하나 틀리지 않고 계속 되풀이 하더랍니다. 슬슬 신자들 사이에도 말이 나오기 시작했고, 참다못한 어떤 신자는 미사 중에 자리를 박차고 나가기까지 하더랍니다. 이에 사목회장이 슬그머니 나서서 신부님께 한 말씀 드렸답니다. “신부님. 같은 강론이 며칠 째인지 모르겠습니다. 이 강론 언제까지 이렇게 하시려는 것입니까?” 이에 신부님이 이렇게 답하더랍니다. “우리 신자들이 모두 실천에 옮길 때까지요.”
오늘 복음은 너무나 잘 아는 내용입니다.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 하느님 나라가 너희 것이다. 지금 굶주리는 사람들! 너희는 배부르게 될 것이다. 지금 우는 사람들. 너희는 웃게 될 것이다.” ‘아니! 아무리 없는 형편이어도 현실적으로 어느 정도는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냐? ’ 라는 말이 나올법 합니다. 하지만 잘 들여다보면 굉장히 현실적인 말씀임을 알게 됩니다. 가난함을 통해야만, 나 자신을 하느님께 개방할 수 있고, 그렇게 할 때 자기의 삶을 받아들이면서 주님을 체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요한 크리소스토모 주교학자 기념일입니다. 그는 설교를 잘했다고 알려지지만 그 내용은 달콤한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악습을 버리고, 개혁을 부르짖고, 잘못된 점을 거침없이 얘기한 내용들입니다. 마찬가지로 ‘사람이 뭔가를 가져야 행복하다’ 는 문제점을 그는 알고 있었습니다. 마치 가진 책이 많다고 하여, 제대로 사는 것은 아닌 것처럼 말입니다. 예수회 총장 한스 콜벤바흐 신부님도 비슷한 말씀을 합니다. ‘인간에게 죄가 생기는 것은, 하느님께서 사람에게 주신, 생명과 사랑의 보물을 망각하게 만드는 부(富)에서 비롯된다. 왜냐하면 부(富)란, 자신의 모든 것을 이미 하느님께로부터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하느님을 반항하고, 단지 지금 가진 것을 편취하여, 소유하느라 열중하기 때문이다.’ 현재 가지고 있는 것을 지키고, 늘리는 것에 열중하다보면 진정 만나야 할 것을 만나지 못합니다. 게다가 현재 갖고 있는 것을 ‘처음부터 내 것’ 이었다고 착각을 하면, 결국 얻게 되는 것은 더욱 빈곤함 뿐일 것입니다. 마치 자식을 자기 소유물이라고 여기었던 방식이, 결국 어떤 결과를 초래했는지 우린 본 적이 있습니다. 그분이 말씀한 ‘가난’을 통해, 결국 무엇을 쥐고 무엇을 놓아야 할지 잘 봐야겠는데요. 너무나 잘 아는 내용이지만 실천하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처럼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도 그렇게 봐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