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23 주일미사

2017. 9. 9. 오전 11:59:10

글자

 연중 23 주일미사. 에제 33,7-9; 로마 13,8-10; 마태 18,15-20

  사회 생활을 하며 여러 사람들과 부딪히게 됩니다. 그래서 관계에서 오는 피로감 때문에 남들에게 뭔가 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없어질 수 있습니다. 게다가 상대방 반응이 시원찮으면 더더욱 마음을 닫고 살고 싶어질텐데요. 얼마 전 읽은 프랑수아 바리용 신부의 흔들리지 않는 신앙이란 책에 보면 이런 말이 나옵니다. 사랑은 죽음보다 강하다. 그것이 우선 삶보다 강하기만 하다면..” 이라고요. 삶보다 강한 사랑이 있다면 그것은 희생이요, 한편으로는 죽음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적으로 하기 힘들더라도, 이유 여하를 따지려 들지 않기에 누구에게라도 다가갈 수 있고요. 또 그렇게 해야한다고 여기니까요. 하지만 대다수가 그러질 못합니다. 마음은 있지만 상대의 반응이 두려워서, 내 마음이 열리지 않아서, 정작 표현은 못하고, 시간만 보내는 경우가 있는데요.

  오늘 독서는 서로를 위해서 침묵하지 않기를 바라는 말씀입니다. 네가 악인에게 그 악한 길을 버리도록 경고하는 말을 하지 않으면, 그 악인은 자기 죄 때문에 죽겠지만 그가 죽은 책임은 너에게 묻겠다. 그러나 네가 그에게 자기 길에서 돌아서라고 경고하였는데도, 그가 자기 길에서 돌아서지 않으면, 자기 죄 때문에 죽고, 너는 목숨을 보존할 것이다.” 가끔 할 말은 해야겠는데, 상대방이 거부할까봐, 또는 내 말을 듣지 않을까봐 두려워서 말씀을 못한다는 분들을 봅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내가 받을 상처를 미리 예상하기보다, 그에게 도움이 된다면 일단 필요한 것을 해주려는 시도가 필요한데요. 병원에 가면 치료가 잘되기 위해 주사를 놔줍니다. 그런데 주사는 아픕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거 맞아야 합니까? 아니면 무조건 먹는 약으로 달라고 해야할까요? 필요한 말을 해주지 않을 때 앞서의 말씀처럼, 그가 죽은 책임은 너에게 묻겠다.” 는 하느님의 말씀에, 여러분은 뭐라고 응답하시겠습니까? 아무 말 안하고 뒷짐지고 있는 것이 능사는 아닌데요. 복음에도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그가 네 말을 듣지 않거든 한 사람이나 두 사람을 더 데리고 가거라. 그가 그들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거든 교회에 알려라. 교회의 말도 들으려고 하지 않거든 그를 다른 민족 사람이나 세리처럼 여겨라.” 여기서 이것을 볼 수 있습니다. 쉽게 포기하지 않는 사랑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답을 찾아봅니다. 서로에 대해 관심이 있지만 서로에게 다가가는 방법은 다른 우리들입니다. 하지만 공통분모는 있습니다. 관심이 있다, 사랑이 있다는 점입니다. 그러기에 힘들더라도 해야 하지요. 그래서 복음 마지막을 이렇게 마감합니다.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이 땅에서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지 청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어주실 것이다.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

같은 곳을 바라보는 가족은 이미 서로를 통해 하느님을 만나고 있는 셈입니다. 두 세 사람이라도 모여 있으니까요. 그 얼마나 다행스런 일입니까? 그렇다면 나의 사랑은 어때야 하겠습니까? 마태오 복음 10장에 보면 그 집에 들어갈 때에는 '평화를 빕니다!' 하고 인사하여라. 그 집이 평화를 누릴 만하면 너희가 비는 평화가 그 집에 내릴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그 평화는 너희에게 되돌아올 것이다.” 비록 나의 사랑을 거부한다 하더라도, 그 평화는 사그러지지 않고 내게도 도움이 되기에, 우린 계속 사랑을 시도해야 한다는 이야기인데요. 상대방이 설사 받아들이지 않더라도, 그래서 당장에는 내 마음이 개운치 않더라도, 사랑은 없어지지 않고 오히려 퍼지면서 우리를 깊게 만들어줍니다. 우리가 주님께 받은 사랑은 이런 성질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쉽게 마음을 접지말고 꾸준하게 전파해야 하겠습니다.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