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28주일. 이사 25,6-10; 필리 4,12-20; 마태 22,1-14
제가 신학교에 가고자 준비하면서 한 행동이 있습니다. 저는 학력고사 세대이기에 다시 수능을 봐야 했습니다. 하지만 달라진 시험을 적응하고 신부님의 삶을 살고 싶어서, 하나는 매일 묵주기도를 하는 것이었고요. 또 하나는 ‘성직자 수도자들은 매일 시편을 가지고 기도한다더라’ 는 말을 어디서 주워들어서, 그게 ‘성무일도’ 란 것도 모르면서, 시편을 매일 한 편씩 읽으며 기도하였습니다. 그러다 시편 27장에 제 눈이 고정되며 그 말씀에 사로잡혔는데요. 그 당시 공동번역 성경에 이렇게 적혀있었습니다. “야훼께 청하는 단 하나 나의 소원은, 한평생 야훼의 성전에 머무는 그것 뿐, 아침마다 그 성전에서 눈을 뜨고 야훼를 뵙는 그것만이, 나의 낙이라.”(시27:4)” 제가 아무래도 신학교를 가고 싶어서 더 눈에 와 닿았겠습니다만, 진정 당신의 집에 머물고픈 마음이 간절했는데요. 그런데 여러분도 그러하십니까? 아니면 아직은 내가 원하는 것을 더 하길 바라십니까?
오늘 복음은 저번 주 복음과 비슷한 구성입니다. 저번 주 복음이 땅주인이 소출을 받으려 소작농들에게 가지만, 소작농들이 자기 것이 아닌데 자기 것처럼 굴었다면, 오늘 복음은 “종들을 보내어 혼인잔치에 초대받은 이들을 불러오게 하여라” 하시며 이제 때가 되었으니, ‘혼인잔치 초대장을 받은 이들을 부릅니다.’ 만, 사람들의 반응은 관심이 없습니다. “그들은 아랑곳 하지 않고, 어떤 자는 밭으로 가고, 어떤 자는 장사하러 갔다.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은 종들을 붙잡아 때리고 죽였다.” 이제 돌아가야 하고, 제자리로 가야하는 때가 왔지만, 그들은 살고있는 지금의 삶이 진짜이고, 여기서 영원하기만을 바랍니다. 현실에서 모든 것을 얻으려는 자세이지요.. 그렇다면 여기서 진짜 삶이란 뭘까요? 내가 원하는 것이 이뤄지는 것이 진짜일까요? 아니면 원래 제자리를 찾아가는 것이 정도(正道)일까요? 여기서 좀 멀리 바라보게 됩니다. 그리 많지 않게 남은 나의 삶을요. 생각보다 많이 남아있지 않습니다. ‘좀 더 나중에, 좀 더 이따가..’를 외치지만 여기에도 한계는 있지요. 다들 압니다. 남은 수명은 그 정도 라는 것을요. 우리가 하느님의 은총이 내리길 바라지만 그것이 하느님의 은총인지 알아차리는 식별력도 필요한데요. 그 식별력을 갖추면 오늘 2독서의 바오로 말씀이 수긍이 갑니다. “나는 비천하게 살 줄도 알고, 풍족하게 살 줄도 압니다. 배부르거나, 배고프거나, 넉넉하거나 모자라거나, 그 어떠한 경우에도 잘 지내는 비결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도 그 비결을 체득해갈 때, 그 날을 기쁘게 맞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이 삶은 무상으로 주어졌습니다. 그러기에 돌아갈 날이 되기 미리 전부터 준비해가야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