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27주간 화요일
이야기 하나로 시작하겠습니다. 어떤 교우가 매일 지정된 시간에 와 성당에 앉습니다. 그렇다고 묵주기도를 한다거나 기도서를 펼치고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앉아 있습니다. 매일 그러고 있기에 본당 신부님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신부님이 물어봅니다. “혹시 하느님이 무슨 말씀하시던가요?” “아뇨” “그러면 형제님이 무언가를 말씀드리나요?” “아뇨.. 둘 다 아무 말 안 합니다.” 얘기는 이것으로 끝입니다. 순간 이게 무슨 소리일까? 하시겠습니다만, 우리가 보통 기도를 ‘하느님과의 대화’ 라고 표현하지요 하지만 실제로는 그분의 이야기를 듣기보다 내 이야기를 쏟아내는 데 바쁘지요. 그분의 뜻하심이 뭔지 모르고, 관심도 별로 없기에 계속 내 얘기만 늘어놓는 분이 있던데요.
오늘 여러분이 들으신 말씀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듣기’입니다. 니네베 사람들은 요나의 말을 들으며 본인의 잘못을 인정하고, 하느님의 마음 상태에 공감을 표현하며 속죄의 시간을 가졌고요. 복음에서 마르타의 동생 마리아는 주님의 발치에 앉아 그분의 말씀을 듣는 데 열중합니다. 그러면 듣는 것을 잘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글과 달리 말은 ‘순간적’ 이라는 특징이 있습니다. 마치 바람처럼 나왔다가 흘러 없어지기에,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집중’ 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듣기를 잘하느냐? 묻는다면 꼭 그렇지는 않아 보입니다. 남의 이야기를 듣고 앉아있지만 속으로는 자기가 할 말을 준비하느라 제대로 듣지 못하는 이들이 있지요. 당연히 그러면 오해가 생길 수 있고요. 그 사람의 참된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는데요.
우리도 이와 비슷해 보입니다. 제가 지금하는 강론 중에서도 제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모르는 분들도 있고요. 미사가 끝나면 그날 복음이 무엇이었는지 기억하지 못하는 분도 있습니다. 우리는 ‘눈’ 을 통해 세상으로 나아가고요. 세상은 ‘귀’ 를 통해 우리 안으로 들어옵니다. 그러면 우리 안으로 좋은 뭔가가 들어오길 바라십니까? 방법이 있습니다. 평소에 침묵과 고요의 시간을 마련하면서 그 시간을 실제로 보내십시오. 당신이 바라는 바가 들려올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