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녀 체칠리아 동정 순교자 기념일. 2마카 7,1-31; 루카 19,11-28
예전 2년간 매일을 평화방송에서 라디오 dj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던 중 초대가수 1명이 나와서 인터뷰 하다가, 잠시 음악이 나가는 사이에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습니다. ‘본인은 흑인이 되고싶다’ 고요. 물론 이해는 갔습니다. 그 친구는 흑인음악을 하고 있었고, 좀 더 소울 충만한 것을 원함을요. 하지만 제가 보기에 자신의 처지에서 뭔가를 찾는 것이 더 나아보였는데요.
오늘 말씀을 들여다보며 이런 것이 보입니다. 대다수 사람들이 자기에게 처한 상황과 주변인들에게 불만을 가지며 살아갑니다. 마치 복음에 나온 백성들이 “그러나 백성은 그를 미워하고 있었으므로, 사절을 뒤따라 보내어 ‘저희는 이 사람이 저희 임금이 되는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라고 말한 것처럼, 여건은 자신의 생각과 다르게 흘러갑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어떤 이는 한 미나로 10미나, 다섯 미나를 벌어들이지만, 주일복음처럼 한 탈렌트 받은 이가 그 돈을 땅에 묻듯이, 받은 돈을 그냥 수건에 싸두는데요. 여기서 우린 ‘원치 않는 상황에 봉착했을 때 어떤 결정을 내리고 있는가?’ 를 보게 됩니다. 독서에 나온 일곱 형제를 둔 어머니는 참으로 힘든 시간을 보냅니다. 아들들이 자기 앞에서 죽어가는 현장을 지켜보며 말합니다. “너희가 어떻게 내 뱃속에 생기게 되었는지 나는 모른다. 너희에게 목숨과 생명을 준 것은 내가 아니며, 너희 몸에 각 부분을 제자리에 붙여준 것도 내가 아니다... 그러므로 그것을 마련하신 창조주께서 자비로이 너희에게 목숨과 생명을 다시 주실 것이다. 이 박해를 두려워말고 형들에게 부끄럽지 않게 죽음을 받아들여라.” 비록 상황이 힘들고 녹록치 않지만 이 시간에서 최고의 것을 선택하고 뽑아내는 지혜와 능력이 필요한데요. 여기서 쉽게 와 닿지 않는 말씀 하나가 나오지요. “누구든지 가진 자는 더 받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이를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까요?
오늘 기념일을 맞이한 체칠리아에게서 답을 찾아봅니다. 하느님께 모든 것을 걸며, 목숨까지 아끼지 않고 내놓았기에 더 큰 영생의 삶을 얻게 되고, 성녀품에 오르는데요. 현실을 살겠다며 구차한 핑계와 변명을 대기보다, 각자가 참된 것을 이행해 나갈 때, 그 분이 주시는 선물이 무언지를 알아가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