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32주일미사. 지혜서 6,12-16;테살로니카1서 4,13-18;마태오 25,1-13
한 명의 신부가 세상에 나오게 되는 때가 되면 이른바 ‘서품상본’ 이란 것을 만듭니다. 자신이 죽을 때까지 가져갈, 성경구절과 주님을 상징하는 성화를 넣는데요. 그래서 대부분 신부님들의 상본 그림에는 십자가, 성작, 포도주, 성체.. 뭐 이런 것들을 넣습니다. 그런데 저는 좀 다릅니다. 제 마인드가 평범하지 않은 모양인지, 젊은 여자만 10명이 가득하게 들어있는데요. 그래서 남들은 이런 상본그림을 보면서 놀리곤 하였습니다. ‘곽 신부님은 나중에 여성사목을 하려는 모양이죠?’ ‘외롭지 않아 좋겠습니다’ 등 별 말을 다하곤 하지만,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오늘 복음에 나온 “그러니 깨어 있어라” 예전 공동번역 성경에는 “항상 깨어있어라” 가 제 서품 성구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왜 이런 구절을 택하였나? 곰곰이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깨어있어라’ 해서, 잠이 많아서가 아닙니다. 교구사제가 되면, 이른바 교인들 앞에 서야하는 공인이 됩니다. 이 자리는 공․사 구별이 확실해야 합니다. 뉴스를 보더라도, 가장 기본적인 분별력이 없어 생기는 문제가 얼마나 많습니까? 사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다니는 직장, 학교, 단체 등에서 작은 직함이라도 맡고 있다면, 우린 이미 공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실상은 어떻습니까? 자신의 자리가 공적인 자리임에도, 마치 사적인 것인 양 대하기에 너무 많은 문제가 생기는데요.
로마서 12장 2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무엇이 하느님의 뜻인지 무엇이 선하고 무엇이 그분 마음에 들며 무엇이 완전한 것인지 분간하도록 하십시오.” 여기서 말하는 ‘무엇’ 이 말하는 것을 잘 분별하고 분간하는 삶을 살다보면,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 사람’ 인 지를 압니다. 헛된 욕심에 빠지지 않고, 괜한 고집을 부리지 않으며, 담백하게 사는 사람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1독서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지혜를 깊이 생각하는 것 자체가 완전한 예지다. 지혜를 얻으려고 깨어 있는 이는 곧바로 근심이 없어진다.” 지혜로운 사람은 헛군데에 정신을 쓰지 않습니다. 자기가 무엇을 해야할 지 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지혜로운 사람이 되고 싶습니까? 지금이 참 좋은 기회입니다. 왜냐하면 지금이 11월이기 때문입니다. 11월은 위령성월입니다. 이는 단순히 돌아가신 분들을 생각하는 날이 아닙니다. 언젠가 죽음을 맞이할 우리의 영혼도 들여다보는 달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매달 편찮으신 분들의 집을 찾아가 성체를 영해드리는 봉성체를 하면서 느낍니다. ‘내 삶도 저리 될 텐데.. 나라고 저렇게 되지 말라는 법 없을텐데..’ 라고요. 그러면서 살아있는 지금의 삶이 얼마나 감사하고 또 얼마나 유한한 지를 보게 됩니다. 그러면서 옆의 사람들을 봅니다. ‘더 사랑하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내 욕심 때문에 한 달에 한번 찾아뵙는 부모님을 더 관심있게 바라보지 못한 것은 아닌가?’ 라고요. 지상에서 만나는 이 짧은 유한한 삶은, 어쩌면 하느님이 주신 귀한 선물입니다. 전정 참다운 삶이 무엇인가를 보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개포동 본당 교우 여러분.
2독서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형제 여러분. 죽은 이들의 문제를 여러분도 알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희망을 가지지 못하는 다른 사람들처럼 슬퍼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지혜, 깨달음, 그것은 결코 대단한 것만은 아닙니다. 지상에서의 자신의 한계를 알 때, 다른 사람들을 어떻게 여겨야 할 지 알게 되며, 주님으로부터 영원한 삶을 약속 받은 우리가, 실망이나 좌절에 휩싸이지 않고 희망의 삶으로 옮겨갈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저를 포함하여 여기 계신 분들.. 잘 살아야겠습니다. 정말 잘 살아야겠습니다. 그러면 잘 산다는 게 뭡니까? 아마 막연하게 생각하는 선상에서 벗어나야 하는데요. 주님께서 내게 주신 약속된 시간은 점차 짧아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상에서의 기회는 단 한 번 뿐입니다. 그렇다면 이 기회를 어떻게 살리겠습니까? 지혜롭게 깨어서 분별하시고, 그 결정에 따라 살아가실 분은,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여러분 자기 자신이란 걸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주님의 지혜를 힘입어 용기있게 살아가시길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