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2주일미사.

2018. 1. 14. 오후 2: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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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2주일미사. 1사무엘3,3-19;1고린 6,13-20;요한1,35-42

  우리 교우중에는 여러 직업과 능력을 갖고 계신 분들이 많습니다. 마치 무림의 고수처럼 평범하게 살면서도 자기가 맡은 분야를 잘 해가고들 계십니다. 하지만 그 평범한 사람이 입을 열거나, 어떤 행동을 하면, 평범에서 비범(非凡)의 세계로 들어가는데요. 물론 사람들 모두가 그런 능력을 지닌 것은 아니기에 있어보이고 싶어서 옷을 화려하게 입거나, 말을 그럴 듯하게 하면서 자기를 내세우기도 하지요. 그러면서 그런 것에 속아, 진짜 실력이 있는 사람이라고 남들이 속을 수도 있겠고요. 그러는 나 자신조차 속아 넘어갈 수도 있기에 조심해야 하는데요.

  오늘 복음에서는 실제로 체험한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나옵니다. 요한의 제자 두 사람이 요한의 소개를 받아 예수님을 따르면서 묻습니다. 스승님은 어디에 묵고 계십니까?그러자 별 말 없이 와서 보아라.” 하십니다. 그리고 겨우 하룻밤을 같이 묵었을 뿐인데 그는 이렇게 증언하지요. 우리는 메시아를 만났소.” 과연 뭘 봤길래 이런 확신에 찬 말을 할 수 있었을까요? 하지만 우리의 모습은 이런 확신보다 1독서의 어린 사무엘의 모습처럼 보입니다. 주님께서 여러 번 부르시지만 그는 깨닫지 못합니다.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무엘은 아직 주님을 알지 못하고, 주님의 말씀이 사무엘에게 드러난 적이 없었던 것이다.” 어쩌면 우리도 많은 부름을 받았었지만 그게 무엇을 뜻하는 지 몰랐던 때가 많았을 지도 모릅니다. 여기서 우린 하느님이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방법에 대해 살펴봐야 봐야 합니다.

  사람은 남이 뭔가를 표현하지 않으면 참으로 알아채기 힘듭니다. 먼저 내 생각이 어떻다. 내 느낌이 어떻다.’ 표현해주지 않으면 남은 절대 알 길이 없습니다. 분명 구약시대 때 하느님은 비밀스러웠습니다. 이른바 선택된 사람에게만 자신의 정체를 알려주셨으니까요. 하지만 신약 시대에 이르러, 주님 자신이 사람이 되어오셔서 와서 보아라 하며 비밀스러웠던 하느님이 개방적으로 자신을 보여주십니다. 그 다음 성령과 함께하는 지금 교회의 시대에 이르러서는, 조금밖에 알지 못했던 하느님의 이야기를 서로가 나누면서 다양한 하느님을 면모를 알게 해주십니다. 솔직하게 말해서 사람이 말하는 언어는 한계를 가집니다. 그리고 표현력도 개인차가 있어서 다 잘 뽑아내지도 못합니다. 그 신비로운 것을 어찌 언어로 다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자기의 마음도 다 표현하지 못하고 있잖습니까? 그래서 오히려 하느님이 표현하시는 침묵의 방식이 사람을 더욱 지혜롭게 만들어줍니다. 왜냐하면 그 침묵을 헤아릴 때만이 진정 주님의 뜻하심을 그 때에 맞게 알아들을 수 있으니 말입니다.

  사랑하는 개포동 본당 청년들과 교우 여러분

  이제 그분의 침묵은 답답함이 아니라, 오히려 그 분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이 되어주고 있음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비록 그분은 3년이라는 짧은 공생활로 조금 밖에 보여주지 않으셨지만, 천주교 신자들은 2천년이 넘는 세월을 지내며 그것을 곱씹고, 자기 것으로 만들어 선포하는, 신앙의 증언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이제 이런 기적의 동참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남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수준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메시아를 보았소 라면서, 내가 체험한 하느님을 기쁘게 증언할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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