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2주간 토요일.

2018. 1. 19. 오후 6: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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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2주간 토요일. 마르 3,20-21

  누구나 자신이 사는 이 시대는 마치 격정적인 파도에 놓인 한낱 나룻배 같습니다. 어찌될지 모르는 미래의 불안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에서도 비슷함이 있음을 봅니다. 누구는 온 몸을 내던지며 부딪쳐 나가는 이들이 있고요. 또 누군가는 못 본 척 고개를 돌리는 이들도 있습니다. 현실 앞에 부서지면서도 결코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고달프게 살아갔던 이들이 있었습니다. 비록 역사에서 흔적조차 남기지 못하였지만, 다른 누군가의 기억과 짧은 기록에서 우연히 그들의 자취를 발견하기도 합니다. 미래를 모르는 여러분의 신앙 상태는 어떠하십니까? 과연 뜨거운 열정으로 살아가고 계십니까? 어쩌면 우리는 세상이 알아주지 않는 작은 영웅들이지 모릅니다. 세상은 우리를 오해하기도 하고, 천대하고 멸시를 주기도 하지만, 이 삶을 천천히 들여다보면 어느샌가 우리를 후끈 달아오르게 해주고요. 정신이 번쩍 들게 만드는 삶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은 만만치 않기 때문입니다. 그저 대충해서는 이룰 수 없기 때문입니다. 혹 운이 좋아서 작은 성취를 이뤘다고 해도, 그것이 결코 오래 가지 않습니다. 한 때 우연히 긁어서 당첨 받은 복권이 인생을 망치는 것처럼 말입니다.

  오늘 복음에 예수님은 오해를 받습니다. 예수님의 친척들이 소문을 듣고 그분을 붙잡으러 나섰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미쳤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사람들을 고치고, 기적을 베풀고, 제자들을 모으는 현장에서 들려오는 소문이란 것이 미친 사람이라는 칭호였습니다. 이 짧은 복음에서 무엇이 느껴지십니까? 많은 이들이 생각하길 종교심, 신앙심을 그저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것, 착한 일 하는 수준 으로 여기는 이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목표점은 처음부터 그런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똑같은 칼이라 해도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칼을 들었다고 해서 다 강도는 아닙니다. 마치 메스를 뽑아들고 환부를 도려내는 의사처럼, 더 선한 것을 추구하기 위해 몸부림을 치는 우리여야 하는데요. 안도현의 시 너에게 묻는다라는 유명한 시가 있습니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 너는 /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우리의 사랑은 얼마나 데일만큼 뜨거웠습니까? 상대가 버거울 정도로, 부담감을 가질 정도로 해준 적이 얼마나 있었습니까? 예수님은 남을 위해 사랑을 퍼붓다가, 미친사람 취급을 받는 것을 복음에는 바람직한 사랑이라고 가르치는데, 우린 무엇이 두려워서 미진한 사랑에 머물렀는지를 봐야하겠습니다. 그럴 때야 비로소 열정을 다해 살아간 이들의 삶을 이해할 수 있을 테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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