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자기가 하고픈 것에 빠지기 마련이다
욕망 때문에 혹은 현실을 잊으려고
자기가 하려는 일이 참이라 믿으며, 나름의 명분(名分) 내세운다
허나 악은 여기를 파고든다
그 일이란 것이, 한편 자기를 잊어버리게 만들기 때문이다
재밌는 것을 하니 얼마나 희열(喜悅)을 가지겠는가?
현실을 잊으니 얼마나 방종(放縱) 하겠는가?
자기를 살리려 했는데, 실제 결과는 반대로 가는 현상이다
얼마 전 ‘콘클라베(Conclave)’ 라는 영화가 나왔다
원작은 소설인데 교황님의 서거와 함께 영화는 시작한다
추기경들이 모이고, 서로 누구에게 투표할까 말이 오가는 것을 보던 중,
진행을 맡은 신부님이 전 날 써놓은 상투적인 강론을 하다가
순간 ‘마음 속에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라면서 말을 이어간다
형제 자매 여러분, 어머니이신 교회에 봉사하는 동안
제가 그 무엇보다 두려워하는 죄는 바로 확신입니다.
확신은 통합의 강력한 적입니다. 확신은 관용의 치명적인 적입니다.
그리스도조차 마지막에 확신을 두려워하지 않았던가요?
“주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시나이까? 엘리 엘리 레마 사박타니..
십자가에서 매달리신 후 고통속에서 그렇게 외치셨지요.
우리 신앙이 살아있는 까닭은 정확히 의심과 손잡고 걷기 때문입니다.
오로지 확신만 있고, 의심이 없다면 신비도 존재할 수 없습니다.
물론 믿음도 필요없겠지요.
의심하는 교황을 허락하시도록 기도합시다
죄를 저지르고 용서를 구하는 교황
그리고 다시 나아가는 교황을 허락하시도록 기도합시다
나 자신에게 함몰되지 않으려 신앙을 택했는데
결국 사람들은 자꾸만 그 길을 택한다. 자신을 살린다고 여기면서
꽃은 바람에 흔들리면서 핀다
나 또한 그러하다
오점없는 완벽한 인간은 없다
의심, 유혹에 흔들이 자칫 나약하게 여겨질 수 있다
허나 여기에 너무 확신에 맹신하면 위험해질 수 있다..
요사이 목소리를 내는 이들 중에 그런 이들이 많은 현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