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숙 데메트리아님의 순례기 올립니다.
2014년 9월 20일~21일 (1박2일) 부산교구 순례입니다.
부산교구 성지순례기
200여 년 전 천주교 박해를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마음을 조아려 우러르면서도 눈을 바로 뜨고 수많은 순교자들을 바라볼 수가 없다. 반역의 역사가 미치도록 가슴아프고, 지금의 우리현실도 답답하기 때문 아닐까. 순교성지순례 때마다 삐뚤어진 방송과 언론, 더 벌어진 양극화로 살아가기도 어려운 나같은 서민은 과거와 현실이 오버랩되어 매우 혼란스럽기만 하다.
어디 천주교신자만 탄압했던가. 동학농민, 보도연맹, 이승만의 수많은 양민 학살.... 5.16, 광주, 세월호참사가 모두 우리의 아픈 역사라 생각한다.
"하느님, 우리 가정 잘 지켜주세요. 우리 아이 좋은 대학 가게 해 주세요. 우리 식구들을 건강하고 행복하게 해 주실 거죠? 저 부자되고 싶어요.... 도와주실 거죠?"
저의 철딱서니 없는 기도를 하느님이 들으시면 '나보고 어쩌라구 헐...' 하시지 않을까...
십자가의 길을 기도하며 오른 밀양 만어산 중턱, 명례방공동체의 씨앗을 제공한 김범우토마스가 우리를 반긴다. 명례방집회를 주관하신 분, 오늘의 명동성당을 있게 하신 분, 귀양을 가서도 천주교리를 설파하신 분. 그분께서 살아계시면 '명례방터를 덩치만 키우는 건 아니냐? 국정원선거개입, 세월호참사 등 국가비극엔 눈감고 있으면서... 쯧쯧' 하시지 않을까?
따스하고 청명한 가을 기운을 호흡하며 찾은 고 배문한 신부의 부산 생곡동 생가. 물레방아가 도는 샘물에 신부님의 환한 모습이 비치는 듯하다. 천주학 연구, 유학과 서학의 비교연구에 힘썼던 순교자 조석빈 조석증 형제의 방치된 시신을 배씨 선산에 암장한 배신부님의 3대조부(배정문), 대대로 조씨형제묘를 보호, 관리한 사실에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해가 뉘엿뉘엿해질 무렵 광안동 수영장대골에 닿았다. 호젓하고 처연하게 보인 건 나만의 느낌일까? 이정식 요한 가족과 양재현 마르티노 가족 등 여덟 분이 군문효수형 당하신 곳, 주택가 한쪽에 숨어 있어 마음이 아팠지만 순교 사적지를 어렵게 찾아 작지만 큰뜻을 기리게 하려는 부산교구의 마음이 엿보인다.
마리아피정센타에 여장을 풀었다. 2층 성당 마당에서 보이는 광안 컨테이너부두를 보고서야 부산에 온 걸 실감했다. 티없으신 마리아 성심 수녀회 수녀님께서 파티마의 세계사도직(푸른군대)에 대한 소개강의를 해 주셨다. 세계평화와 죄인들의 회개를 위한 쎌기도, 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오기를 기원하는 묵주기도의 중요성도 새삼 느끼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오고가는 버스 안에서도 기쁨조의 역할을 톡톡히 해 주시고 기타와 율동으로 남은 여독을 친교의 시간으로 채워주신 형제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개장 시간보다 30분 앞서 배려해 주신 덕분에 오륜대성지 안의 이정식요한 가족묘와 양재현마르티노가족묘(가묘)까지 참배했다. 두손모아 절을 하고 순교자찬가를 부를 땐 숙연해
지기도 했다. 박물관에 전시된, 한꺼번에 많은 사람들을 죽이기 위해 고안된 1/4축소 대들보 사형틀 앞에선 한참 발을 떼지 못했다. 언양으로 향해 죽림굴은 시간제약상 못 가보고 살티공소와 김영제베드로와 김아가다 묘에 큰절을 올렸다. 당시 관헌들이 철수하면서 교우들이 살아남았다는 뜻의 살티(살 수 있는 터)가 못내 목을 메이게 한다.
언양 성당은 80년 된 근대문화유산이다. 70여 분의 성직자와 20여 분의 동정녀를 배출하며 순교선열의 발자취가 남아 있는 곳이다. 뒷산 화강암으로 만든 석조건물이어서인지 성당 안이 무척 시원하고 외부와 전경이 정말 아름다웠다.
울산을 가로지르는 동천강변에 있는 울산병영순교성지는 지금도 그날의 참혹한 순교자 처형을 침묵으로 전해 준다. 이양등베드로 김종륜루카 허인백야고보님의 군문효수 당하심을 끝까지 증거하겠노라고... 울산병영순교성지성당의 아이콘 '세 개의 못'에 꽂힌다. 세 분의 순교자와 예수그리스도께서 세 개의 못에 의해 십자가에 못박힌 것을 상징한다고 한다.
수용능력이 모자라 여러 성지를 한꺼번에 저장하기 힘들었지만 힘들고 어려울 때면 나에게 숨은 힘이 될 것이다.
앞으로도 책으로, 본당 주최 성지 순례로도 감정이입이 부족할 때 순교자현양회의 문을 두드릴 것이다. 감히 혼자서는 엄두도 못낼 천릿길 성지순례를 할 수 있게 도와주심에 감사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