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9/15주어사터,대감마을

2013. 10. 23. 오전 10:3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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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 순교자 현양비, 주어사 터, 대감마을과 한강개를 다녀와서

 

구갑회 (요한) / 성지안내봉사자 ․ 성산2동 성당

옅은 이슬비가 내렸지만 쾌청한 가을하늘로 바뀌어 가벼운 마음으로 순조롭게 출발하였다. 하루 전 가을비가 한여름 폭우처럼 내려 흘러내리는 계곡물로 산행이 어려울 것이라는 소식이다. 걱정하면서도 계곡물이 줄었을 것이라 믿고 기도하며 첫 목적지인 여주 성 바오로 성당에 도착하여 근처에 있는 순교자 현양비를 찾았다.

주택가 골목에 자리한 현양비는 가로 1.5m, 세로 0.7m, 높이 2.2m로 작은 원형 십자가아래 순교자 찬가, 그 아래 여주 출신 순교자 윤유일 바오로를 비롯하여 20분의 이름, 세례명, 출신지, 치명 날짜 와 장소가 새겨져 있다. 그런데 주변을 푸른색 철망으로 둘러치고 주차를 금지하는 등 안내판을 세워 놨는데 바로 옆에 엉뚱하게 재활용 수거함이 있었다. 일반인 접근이 어렵게 들어가지 못하게 막아놓고 관리가 안 된다고 생각되니 순교자들께 죄송한 마음마저 든다. “오랜 세월 지나 이렇게 순교자님들을 기리게 된 저희를 용서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하고 기도 해 본다. 이어서 미사에 참례 하였는데 강론 중 오늘 순례의 영성을 “살아도 천국이요 죽어도 천국”이라 말씀 해 주셨다. 순교를 받아들인 조금 전 만난 순교자님들의 천국을 그려 본다.

드디어 오늘 산행과 함께 만나는 주어사 터를 향해 차에 올랐다. 구비구비 산을 넘고 돌아 버스가 더 가지 못하는 곳에 도착 하였는데 그 앞에 세찬 개울물이 흐른다. 이곳은 여주군 산북면 하품1리인데 전봇대 이정표에 “주어리”라고 바뀌어 있었다. 주어사 터가 있는 해발 667m 앵자봉이 보인다. 앵자봉 기슭에 자리한 주어사와 그 산 넘어 천진암을 오가며 1779년 권철신(암브로시오) 주도로 이벽(세례자요한), 이승훈(베드로)등 성호학파의 학자들이 참여하여 유학과 더불어 한역서학서를 연구하던 한국 천주교회의 기원이 된 강학이 이뤄진 곳이다. 산 입구에 이르니 계곡물이 흘러 만류하였지만 몇몇 분을 제외하고 일행 모두 앞 다투어 물을 건너 오르기를 40여분 이번엔 길이 급류에 잘려나가 더 오르기가 어렵게 되니 산행을 멈추기로 하였다. 2-3분의 형제님들은 마지막까지 올라 절터로 추정하지만 아무런 흔적도 없는 주어사 터를 카메라에 담아 왔다. 이 높고 깊은 계곡에 자리한 주어사가 왜 강학의 장소였을까? 정약전, 약용 형제의 광주 마재와 권철신, 일신 형제의 집이 있던 양근의 한강개가 이곳에서 멀지 않았기 때문이다.

순례자는 눈으로 보고 느끼고 싶다. 물길로 막히고 잘려나가 가지 못하고 터까지 간다 해도 실체가 별로 없지만, 봉사자의 스토리텔링에 따라, 당시 이곳에서 진리의 빛을 찾고 “죽어도 우리에겐 천국이 있다.”는 그 믿음 하나로 순교의 길로 나아갔던 그분들의 숨결을 느껴보려 하였다. 이름 모르는 들꽃과 더불어 잔잔한 가을바람을 맞고 내려오며 이번에는 모두 맨발에 계곡물을 건너며 순례의 다른 정취도 느껴봤다. 돌아오는 길에 권철신의 무덤만 남아 있는 대감마을을 스치듯 지나오며 준비한 대감마을과 한강개의 내력을 살펴보며 짧지만 긴 역사 기행을 마쳤다.

책 속에 있는 학문 연구를 통하여 천주님의 뜻을 찾아내고, 이벽(세례자요한), 이름 그대로 주님의 도구가 되어 새 길을 열게 하신 하느님의 섭리는 오묘하기만 하다. 구도자로서 걸었던 그 길에 동참 했다고 생각하니 거룩하게 지낸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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