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교구 우곡 성지와 홍유한 고택을 다녀와서
조경미(아녜스)/순례자·서울대교구 명동성당
막 잠에서 깨어나면서 벽에 걸린 시계를 보니 7시 2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가슴이 철렁, “아니, 이를 어째? 오전 7시 40분까지 사당역에서 버스를 타기로 했는데 늦잠을 잤구나... 가기는 다 틀렸구나” 낙담을 하다가 다시 정신을 차려 TV를 켜보니 일요일 오전이 아닌 전날 토요일 저녁이었다.
15일 일요일 새벽 5시에 일어나 샤워를 마치고 준비를 한 뒤 집을 나서니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는 친구와 함께 버스에 올라 친절하신 봉사자 분들의 안내로 오늘의 일정을 설명 들으며 서울에서 우곡 성지까지의 3시간 30분 동안 친구와 수다를 떨기도 하고 비 내리는 창 밖의 풍경을 보기도 하면서 처음 가보는 우곡 성지에 대한 기대감에 마음이 들떠있었다.
11시 30분 경 드디어 도착. 우곡 성지는 입구에서부터 남다른 느낌이 들었다.
우측에 홍유한 선생의 동상과 그 옆에 예수상이 있고 조그만 개울을 따라 건너면 바로 선생의 후손들 가운데 순교한 13위 후손들의 현양비가 보인다. 그리고 바로 13인의 가묘가 있다. 참 멋스럽고 경건한 마음이 든다.
한국에 천주교회가 세워지기 전에 <칠극>에 의한 천주교 수계생활을 28년간 행했던 한국 최초의 수덕자 농은 홍유한(1725~1785) 선생.
조선 정조 때의 인물 홍유한은 16세부터 실학자 성호 이익(1681~1763)의 문하에서 학문을 닦았다. 1750년 경부터 이익의 다른 제자들과 함께 <천주실의> <칠극>등을 공부하다가 1757년 경 한양의 살림을 정리하고 충청도 예산으로 내려가 18년간, 1775년 현 영주시 단산면 구구리 지역으로 옮겨 다시 10년 간 혼자서 천주교 수계 생활을 철저히 하였다.
당시에는 기도책도 없고 축일표도 없었으나 7일마다 축일(주일)이 온다는 것을 알고 있어 경건하게 축일을 지켰고, 금욕일을 알지 못했으므로 언제나 좋은 음식을 먹지 않았다고 한다.
선생께서는 지나친 고행과 절식으로 점차 몸이 쇠약해졌으나 오로지 기도와 묵상으로 만년을 보내다가 1785년 1월 30일(음) 60세로 세상을 떠났다.
아담하고 소박한 성당, 그 분위기와 잘 어울리시는 신부님. 미사가 끝난 뒤 준비되어 있는 비빔밥은 왜 그리도 맛있던지... 구수한 된장찌개 또한 잊혀지지 않는다.
식사 후 현양비와 가묘를 둘러본 다음 각자 뒤편의 길을 따라 산길을 올랐다. 오른쪽으로 해서 십자가의 길을 시작해서 산을 한바퀴 돌고... 주변의 자연경관이 너무 멋진 곳이었다. 조용하고 아늑하며 평안한 마음이 드는 아주 아름다운 성지였다.
서울로 돌아오는 버스에 올라 창밖을 내다보니 신부님께서 비를 맞으시며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들어주고 계셨다.
성지를 다녀올 때마다 나는 새삼스러이 순교한 선조들의 그 절대적이고 순수한 신앙을 향한 일편단심에 감동을 하게 된다.
“신앙의 신비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