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경이’와 같이 강인한 신앙선조들이여!
- 김난식 묘와 정읍 신성리공소를 다녀와서 -
손연미(아네스)/순례자 ‧ 방배동성당
회문산 자락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김대건신부님의 아우인 김난식(프란치스코)과 7촌 조카 김현채(토마스)의 묘를 찾은 날은 연일 이어진 가을 무더위에 지쳐있던 순례객을 달래주는 듯 상큼한 가을바람과 뿌연 안개로 장식되어 있었다. 두 분은 1866년 병인박해 때 피난 오면서 부터 사람들의 발길이 미치지 않는 이 깊은 산중에 교우촌을 형성하며 화전을 일구고 살면서 신앙에 매진하다 생을 마감하셨다고 한다.
두 분을 뵙기 위해 질경이가 지천으로 깔려있는 산길을 걷기 시작했다. 묘를 70M 남겨놓고 산꼭대기로 연결된 경사가 심한 마지막 152번째 돌계단을 밟는 순간 갑자기 펼쳐지는 두 분의 묘를 보고 놀라고 말았다. 왜냐하면 이처럼 높고 척박한 곳에 자리 잡은 묘를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구름을 벗 삼아 하느님과 가장 가까이 대화하면서 지내시는 두 분은 살아서는 얼마나 힘들고 외로웠을까? 특히 김난식(프란치스코)는 아버지 김제준(이냐시오)과 형인 김대건 신부님이 순교하고 어머니 고 우르술라도 떠나신 후 혼자 남은 그 외로움은 얼마나 컸을까? 두 분을 향해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공경심으로 절하고 난 후 봉사자의 안내로 풀을 뽑았다.
이어 신성리 공소로 가기 위해 산길을 내려가는 길바닥은 여전히 질경이로 뒤덮여 있었다. 문득 앞사람 발밑에 밟힌 질경이를 바라보았다. 분명히 밟혀서 축 쳐져 있어야 할 질경이가 다시 생생하게 몸을 가다듬고 일어서는 것이 아닌가. 진정 이 많은 질경이들이 이 회문산 자락에서 숨어 신앙을 지키셨던 우리 신앙선조들의 모습일 것이다. 산이 깊고 높아질수록 질경이는 더 많아져 언제 밟혔냐는 듯 일어서는 모습에서 나는 조그만 유혹에 흔들리며 필요할 때만 서랍을 열어, 주님을 찾는 이기적인 신앙생활을 반성하였다.
이어 찾은 곳은 황석두(루가)성인과 다블뤼 주교, 위앵신부, 오메트르 신부, 장주기 요셉 뿐만 아니라 이들의 순교 사실을 교회에 증언한 황마르타가 살았던 정읍 신성리 공소였다. 칠보성당 신부님께는 강론을 통해 순교성인들의 순교정신과 투철한 신앙심을 자신의 삶의 거울로 삼아 각자의 자리에서 빛과 소금으로서의 역할을 다하라고 하셨다.
이 소중한 신앙인의 자세를 알려주고자 주님께서는 나를 이 순례의 행렬에 끼워주셨나 보다. 앞으로는 ‘질경이’와 같이 진한 신앙선조의 삶의 자세를 배워 일상생활 속에서 희생과 사랑을 실천하는 진정한 주님의 자녀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