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6 여우목, 마원 (2011년 11월 회보)

2012. 1. 4. 오후 1:34:50

글자

문경 마원성지와 여우목에서...

 

황현순(데레사)/ 순례자․신정동성당

가을비가 오락가락하는 가운데 떠난 성지순례. 비와 햇볕과 구름을 번갈아 보여주며 문경이 우리들을 맞아주었다. 문경은 탄광이 많이 있는 산이 많은 오지로만 알고 있었는데, 오히려 그 깊고 아름다운 산자락이 교우촌을 만들게 해주었고 박해를 피해 온 선조들의 보금자리가 되어 쉴 수 있게 해주었다.

문경으로 들어서는 입구에 길가, 정말 그냥 길가에 진안리 성지가 있었다. 옛날에는 주막이 있어 지나가는 이들의 다리를 쉬게 해주었다고 한다. 지금은 잔디밭으로 되어 있지만, 진안리 성지는 최양업 신부님의 발자취와 마지막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라고 한다.

마치 어디서 만난 적이 있는 것 같은 친근한 인상의 문경성당의 신부님과, 그곳 교우들과 함께 미사를 드리게 되었다. 순례객이지만 낯선 타지사람들에게도 기꺼이 자리를 내어주신 문경성당의 교우 어른들께 감사드리고 싶다.

미사를 마치고 월악산 자락에 있는 여우목으로 출발하였다. 비는 계속 한줄기씩 오고 그치고를 반복했다. 옛날에 여우가 많이 있어서 그런 건지 여우목이란 이름을 모두 궁금해 하였다. 신앙을 지키기 위해 깊은 산속으로 피난하신 신앙선조들, 그 분들이 일구어 만든 마을 앞마당에 지금은 자동차가 서 있었다. 하늘에 닿을 듯 마을을 둘러싼 나무들, 주황색의 감을 가지가 휘어지도록 매달고 있는 감나무들…. 그 옛날에도 그랬을까? 여우목을 내려오며 안내자께서 팔순 노파와 순교 이야기를 해주었다. 문득, 나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다음으로 간 곳은 박상근 마티아의 묘가 있는 마원성지였다. 십자가의 길을 모든 순례자가 함께 걸었다. 가파르고 비탈진 길이었지만 주변의 사과나무들이 정말 예뻤다. 많은 교우들이 박해를 피해 고향을 떠나 찾아들었던 문경, 발각되면 다시 각자의 고향으로 돌아가 처형당하였다고 한다.

온갖 고문과 배교의 위협을 참아내신 선조들의 삶이 있어 오늘 우리가 편안하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저려온다. 지금 우리는 어떤가? 항상 편하게 쉽게만 신앙생활을 하려고 하는 건 아닌가? 일상으로 돌아가면 모두 잊어버릴지도 모르겠지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 성지순례였다. 비바람을 이겨내지 못한 사과는 맛이 없다. 다 익기도 전에 땅에 떨어져 그냥 썩고 만다.

나의 신앙도 맛이 잘 들도록 다시 마음을 가다듬어 본다. 자신을 돌아볼 기회를 주신 우리 주님께 감사드린다.

댓글 1

  • 2012년 1월 12일 오전 10:22

    "여우목을 내려오며 안내자께서 팔순 노파와 순교 이야기를 해주었다. 문득, 나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화두와 느낌은 각기 다른 것 같습니다. 미미한 공부가 파생 증폭 되어 메아리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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