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따라 오너라!
- 대구 관덕정, 성모당 성지순례기 -
김혁(시몬)/성지안내봉사자 ․ 토평동성당
“나는 이제 순교하러 떠난다. 너희들은 집에 돌아가 성실하게 천주님의 계명을 지키다가 나를 따라오너라.” 이윤일 요한 성인은 1867년에 관아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압송되어 가면서 자녀들에게 마지막으로 이런 말씀을 남겼다. 여우목에서 전교회장의 직분을 성실히 수행하셨고, 상주감옥에 갇힌 이들의 모범이셨으며, 대구 관덕정에서 순교의 월계관을 받으심으로써 성인의 반열에 오르셨다.
순례자를 태운 버스가 사당역에서 출발할 때만해도 장맛비는 벌써 스무날이 넘도록 하염없이 내리고 있었다. 봉사자들이 자기소개를 한 후, 곧 바로 시작기도와 성가를 부르며 순례여정을 시작하니 우리의 가슴은 차츰 싱그러움으로 가득해졌다. 버스가 경기도계를 넘어서 충청도로 접어드니 계곡마다 가득하던 운무는 감쪽같이 사라지고 이내 반가운 햇살이 우리를 반긴다.
관덕정 순교기념관은 대구, 복잡한 도심 한 가운데 있으면서도 깔끔하고 아담하게 우뚝 솟아있어 그 모습이 퍽 인상 깊다. 들어서는 입구에 좀 작아 보이는 ‘돌 형구’가 우리를 맞이하기에 상징적인 모형이 아닐까 생각하면서 아래 설명문을 보니 근처에서 발굴된 실제라고 한다.
순례자들을 반가이 맞아 주시는 신부님과 함께 주일미사를 드리고 나서, 이 곳 안내 봉사자님으로부터 노래산, 머루산 같은 교우촌들은 밖에서는 보이지 않으나 안에서는 농사를 지을 터전이 있는 곳에 형성되었다는 설명과 함께, 경상도는 소위 추로지향(鄒魯之鄕)으로서 박해를 다른 곳보다 더욱 심하게 받았다고 한다. 이어서 빛나는 성광들에 모셔진 성해실, 인형전시관, 순교자를 묘사한 스테인드글라스들을 인상 깊게 보고 난 후 우리는 성모당을 향하여 출발했다.
길 안내를 자처하는 한 형제님이 나타나 골목길, 지름길로 따라 가다보니 곧 대구 가톨릭대학교가 나왔다. 이내 ‘성유스티노신학교’가 보이니 관련 설명을 좀 하겠다고 하신다. 그 분의 이야기는 천주교의 근세 역사로 흘러 들어가고 있어서 빠져나올 길이 묘연하다. 그래서 이럴 때는 곧장 본론이나, 요점으로 들어가는 아량을 발휘해야만 한다는 교훈을 또 한 번 깨닫게 된다.
루르드의 동굴을 그 대로 옮겨 놓은 듯 성모당 앞에 이르니, 그 훤칠함에 자연히 옷깃을 여미게 되고 기도를 드리지 않을 수 없는 마음에 사로잡힌다. 순례객들은 각자 기도를 드린 다음, 함께 모여서 기념사진을 찍고 돌아오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주교좌성당인 계산 성당에 잠시 들렀다가 왔다. 어렵사리 찾은 순례지에서 오랫동안 머무르지 못하고 훌쩍 떠나게 되어 늘 아쉽다. 신앙의 선조들이 흘린 피와 땀이 스며든 생생한 순교 현장에 찾아와서 드리는 우리들의 화살기도가 꼭 이뤄지기만을 바랄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