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은 이루어진다.
–초남이 성지와 수류성당을 찾아서-
범진순(아녜스)/순례자 ․ 반포성당
주보를 꼼꼼히 읽던 중에 작은 글씨로 성지순례 안내 글이 눈에 띄었다. 서울대교구 순교자 현양회 하루 성지순례, 초남이 성지와 수류성당…. 경기도, 충청도에 있는 웬만한 성지는 한두 번 이상씩 다녀왔는데 이곳 성지는 아직 가보지 못한 곳이다. 더구나 고향 전주에서 가까운 곳이니 더욱 맘에 들었다. 바로 전화해서 2명을 미리 신청하고 해외 출장 중인 남편을 기다렸다. 나는 성지순례를 종종 다녀왔지만 남편은 아직 제대로 된 성지순례를 해본 적이 없었고 마침 일요일이니 함께 가자고 권유 해야지 마음먹었다.
그런데 남편 스케줄은 꽉 차있어 여유가 없어보였다. 남편은 토요일은 골프, 결혼식 그리고 월요일에 하는 성서 백주간 숙제와 성서 쓰기가 밀려있어 일요일엔 집에서 숙제를 해야 한다고 난감해 했다. 내가 생각해도 수긍이 가는지라 괜찮다고 친구랑 가던, 혼자 가던 알아서 할 테니 걱정 말라고 안심시켜 주었다. 그런데 일요일 새벽, 순례갈 준비를 하고 있으려니 늦잠 자겠다던 남편이 먼저 식탁에 앉아 같이 가겠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이 얼마나 기쁜 일인지 나의 꿈이 이루어지는 순간이었다. 집을 나서니 날씨도 너무 좋다. 모처럼 남편과 데이트 겸 소풍 겸 그리고 그렇게 바라던 순례 동행길이다. 오늘 왠지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았다.
사당역에 도착하여 7시40분에 일행을 만나 8시 정각에 출발하였다. 성지순례 안내하시는 형제님의 훈훈한 외모와 일목요연하게 우리나라 천주교 전래 과정을 설명해 주시는 강의(?)는 여기 저기 주워들어 뒤죽박죽인 내 머리 속을 깔끔하게 정리해 주신다. 아! 그야말로 전문가이시다. 버스 안에서 묵주기도, 103위성인 호칭기도를 하면서 일행과 같은 형제자매임을 느끼며 마음이 따뜻해지는 순간 벌써 초남이 성지에 도착을 했다.
초남이 성지! 호남의 사도이며 순교자인 유항검 아우구스티노의 생가 터, 그리고 1794년 최초로 조선에 입국한 외국인 선교사인 중국인 주문모 신부님이 유항검의 초청으로 전라도에 처음으로 방문한 곳이다. 유항검 아우구스티노는 호남지방에 복음을 전파하는데 절대적인 공헌을 한 초대 조선 천주교회의 핵심적인 인물이었다. 1801년 신유박해 때 46세 나이에 외국인 신부의 입국을 도와 내통했고 사교를 믿었을 뿐만 아니라 청나라에 청원서를 냈다는 죄목으로 능지처참 형을 받고 전주 남문 밖에서 참수 치명하였다. 이때 그가 전교한 200명의 신자들도 같이 참수 치명되었다 한다. 그리고 그의 아들 유중철 요한과 이순이 누갈다의 4년간의 동정 부부 생활은 참으로 아름다웠으나 그들도 1801년에 순교하게 된다. 이 누갈다의 순교 직전 마지막 증언과 순교 모습은 “모든 조선의 순교자 중에서 우뚝 솟아난 하나의 아름다운 진주”였다고 전해진다. 왕손의 딸로서 시골 전라도 땅으로 시집을 와 동정 생활을 하던 신혼집 생가가 여전히 우뚝 솟아 있고, 주인은 가셨지만 그 기개만큼은 아직도 남아있는 듯하다. 다시는 역적의 기운이 태어나지 않도록 집터에 웅덩이를 파놓았다 한다. 이 웅덩이 앞 큰 바위에 파가저택이라 새겨진 제대에서 집전되는 감격스러운 미사! 날씨도 한 여름의 더위를 뽐내듯 너무 좋았고 웅덩이에 피어있는 연꽃들이 그렇게 예쁠 수가 없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조화인가!
그리고 미사를 집전하는 김환철 신부님은 여고시절 전주 전동성당 주임신부님이셨다. 이곳에서 뵈니 정말 감회가 새로웠다. 그 때 여고생은 어느덧 딸을 셋을 둔 중년 여인이 되었고, 준수한 외모와 영국신사 같던 신부님께서는 어느덧 금경축을 앞둔 노사제가 되어 계셨다. 반갑게 인사드렸지만, 어찌 세월의 흐름을 막을 수 있으랴. 누구네 동생이고 누구네 딸이라고 소개하니 겨우 알아보신다. 그 여고시절을 돌이켜 보는 추억의 여행이었다. 우리 남편도 너무 미남이라고 하신다. 덕분에 미사 중에 기도 봉사를 하였다. 중국 주문모 신부님이 첫 미사를 봉헌했던 경당에서의 맛있는 점심은 엄마의 손길을 느끼게 해주는 고향의 맛이어서 더욱 정감이 있었다.
그리고 버스로 1시간 정도 갔을까? 모악산 산속 오지에 박해시절 박해를 피해 전국에서 모여 들어 교우촌을 형성한 마을에 세워진 곳, 120년의 교우촌 명성을 이어온 ‘성서 못자리’ 수류성당 ! 오래된 큰 고목의 정자나무와 큰 손을 활짝 벌리고 우리를 환영해 주시는 예수님, 그리고 언덕 위에 우뚝 자리 잡은 아담한 성당! 처음 방문하는 성지나 성당에서의 기도는 더욱 특별히 들어주신다는 어떤 수녀님의 말씀을 기억하며 함께 온 우리 남편의 건강을 위해 기도를 드렸다. 이곳 교우촌 마을은 54년생이 가장 젊은 청년(?)이란다. 이곳 수류성당은 신부님과 스님이 지도하는 두메산골 어린이 축구팀의 이야기를 그린 가족영화 ‘보리울의 여름’촬영지이기도 하다. 영화에 나왔던 화율 초등학교도 버스 속에서 힐끗 훔쳐보며 수류성당을 뒤로하고 유요한과 이누갈다 동정부부의 영화를 감상하면서 서울로 향했다. 옆에 앉아 있는 남편도 아주 즐거운 표정이다. 이제 자주 성지순례를 가자고 약속하면서 같이 묵주기도를 드렸다. 이것이 내 꿈이 아니던가? 나의 꿈은 이루어졌다. 앞으로도 더 많은 꿈들이 소복소복 쌓이길 주님께 기도드린다.
성지순례를 하면서 느낀 소감 한마디! 천주교 신자의 특징이랄까? 같이 하루를 보냈으면 그야말로 같은 배를 탄 동지들인데 통성명도 못하고 제대로 인사도 못 나누었고 어정쩡 헤어짐이 나의 무관심 탓인지…. 심지어 봉사자님의 성함조차 모르고 하루를 보내고 왔다. 다음에는 서로 인사라도 제대로 나눌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그리고 이렇게 좋은 프로그램이 좀 더 널리 홍보가 되어 많은 신자들이 함께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나도 성서백주간을 같이 하는 자매들에게 이야기하여 다음번 순례 때엔 함께 해야겠다. 물론 남편과 다음 기회에도 함께 할 것이다. 이런 좋은 기회를 주신 주님과 봉사자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