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원 성당과 부엉골 신학교터를 찾아서…
유정희 세레나/순례자 ․ 청담동 성당
4월 15일 일요일 아침. 생전 처음으로 우리 신앙의 요람이요 선조의 얼이 담겨있는 풍수원 성당과 부엉골 신학교터로 향하는 성지순례 여행에 합류하였다. 전부터 기회가 되면 개인적으로라도 우리나라의 성지들 곳곳을 순례하고 싶다는 바람이 크리스티나씨의 초대로 이렇게 쉽고 빨리 이뤄져 기쁘고 설레였다. 특히 박해를 피해 강원도 첩첩산중에 찾아들어가 형성한 한국 천주교 최초의 교우 신앙촌인 강원도 횡성군 풍수원. 정규하 아우구스티노신부님과 교우들이 직접 벽돌을 굽고 나무를 베어 지은 한국인 신부님이 지은 첫번째 성당인 풍수원 성당. 신앙의 요람이요 선조의 얼이 담겨있는 역사현장을 찾아간다는 것이 우리 신앙의 발자취를 제대로 좇는 것 같아 가는 내내 가슴이 뛰었다.
풍수원 성당에서 드리는 순례자 미사에서 신부님이 전해 주시던 감동 어린 교우촌 실상과 함께 어린 시절 할아버지에게서 들었던 박해를 피한 우리 조상들의 피난살이 현장과 기운이 직접 전해지면서 더욱더 경건한 마음자세를 갖게 되고 지금 우리가 누리는 이 모든 것이 은총임에 감사하게 되었다. 미사 시작 전에 풍수원 성당옆 십자가 동산에서 바친 십자가의 길과 정상에 있는 묵주 동산에서 올렸던 우리 순례자들의 기도가 이 곳에서 살다 가신 우리 선조들의 굳센 신앙에 감사하고 닮아가고자 하는 우리의 굳센 결의가 되었다.
미사를 마치고 돌아본 본당 뒤편 풍수원 유물관에서는 신앙생활 초기에 사용하던 각종 유물과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어 더더욱 조상들의 그 시절의 삶을 직접 느낄 수 있었다. 특히 신부님이 입으시던 제의와 전례에 사용 하던 유물과 흙으로 빚은 십자가, 한글 미사책과 교우들이 직접 손으로 베껴 쓴 성경, 그리고 지금도 소리가 나는 야마하 풍금….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가 있는 것 같이 생생하게 그 숨결이 느껴졌다.
우리 순례일행은 풍수원 성당 자매님들이 정성스럽게 장만하여 주신 건강밥상을 시장기와 더불어 감사한 마음으로 맛있게 먹고는 몇가지 풍수원 토산물을 장만하고 뿌듯한 마음으로 다음 순례지인 부엉골 신학교터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다.
최초의 한국 신학교 ‘예수 성심 신학교’인 부엉골 신학교 터를 찾아 산속으로 찾아 들어가는 발걸음이 다소 무겁게 느껴졌다. 박해를 피해 세상을 떠나 첩첩 산중에 숨어 마련한 신앙의 산실. 세상과 동떨어져 철저히 고립되고 열악한 환경에서 오로지 주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제가 되고자 하였던 7명의 신학생과 벽안의 교수 신부님. 지금은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고 그 흔적조차 없으나 그 분들에 대한 기억은 이 산 골짜기 골짜기마다, 나무줄기 마다, 바람결과 흙내음 속속들이 새겨지고 배어 있어 시공을 넘어 그 분들이 살아 숨 쉬었던 이곳에서 우리와 함께 하고 있는 듯 하여 가슴이 뭉클하고 눈물이 핑 돌았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서 부엉골 신학교 터를 안내하는 작은 푯말이라도 세우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아직 정확한 고증이 되지 않아서 준비 중인지는 모르겠지만….
주님! 오늘 저희를 이 순례여행으로 이끌어 주시어서 감사드립니다. 이 모든 여행을 준비해 주시고 이끌어 주신 봉사자님들과 기사님들께 그리고 함께 동무해 주신 형제자매님들께 주님의 은총 주시옵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