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거산 성지와 사사리 정약종의 묘를 다녀와서
김순봉(비아)/순례자 ‧ 하계동 성당
성지순례를 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주보를 보다 우연히 5월 하루일정 지방 성지순례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몇 년 전부터 결혼기념일이 있는 5월에는 남편과 성지에 가곤 했기 때문에, 성지순례를 통해서 술자리가 잦아 소원해진 우리의 관계도 회복하고 술이 아닌 성령에 취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순례를 가기로 결정했다. 요즘 냉담 중인 남편이었지만 1일 피정 가는 것엔 흔쾌히 참회하는 마음으로 순례하겠다며 따라주었다.
기다리던 성지순례 날 남편의 늦은 귀가로 늦잠을 자고만 우리 부부는 부랴부랴 세수만 하고 급한 마음으로 사당역으로 향했다. 봉사자님의 친절한 안내로 버스에 올라타니 드디어 오늘 여정에 주님께서 우리를 초대해 주셨구나 하는 안도감과 함께 감사기도가 절로 나왔다.
버스를 타고 1시간 30분쯤 지나 굽이굽이 산길을 지나 성지에 도착하게 되었다. 우리가 순례한 첫 번째 순례지는 대전교구「성거산 성지」였다. 무명 순교자들의 줄무덤과 교우촌으로 이름난 성거산 성지는 한국의 성지 중에도 보기드문 해발 579미터로 차령산맥 줄기의 높은 고지대에 위치하고 있어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고 있었다. 성지에 도착해 봉사자님의 성지에 관한 안내를 받은 후 십자가의 길 15처를 바쳤다. 모두 처음 만난 분들이었지만 언덕길을 오르며 예수님의 수난을 묵상하니 예수님의 이름 아래 한 형제자매가 된 느낌이었다.
이어 제1 줄무덤 참회예식이 있었다. 제1 줄무덤에는 38기 중 5위의 이름이 밝혀졌을 뿐 다른 순교자들의 신원은 확인할 수 없다고 하니 많이 안타까웠고 숙연해졌다. 줄무덤에서의 참배를 마친 후 전국 각지에서 오신 700여 분의 교우 분들과 함께 야외미사를 드렸다. 야외제대를 중심으로 성모상과 순교자 현양탑이 세워져 있는 성모 광장에서 자연과 하나 되어 드리는 미사는 은총 그 자체였다. 주님의 승천대축일이라고 신부님께서 장엄축복도 주셔서 더욱 행복했다.
맛있는 점심식사를 마치고 제2 줄무덤 참배가 끝난 후 「순례자의 길」에 초대받았다. 숲속 오솔길을 따라 대형 사기 호롱에 새겨진 103위 성인과 성지에 묻힌 무명 순교자에게 간구를 청하며 기도를 바치다보니 정말 빠져드는 듯한 기도의 묘미를 느낄 수 있었다. 가는 곳곳마다 피어있는 야생화는 무명 순교자들의 얼을 느끼는데 한 몫을 하였다. 박해시대 선교사들과 신자들의 피신처요 은신처였던 소학골 교우촌과 서들골 교우촌을 돌아보며 나의 나태한 신앙생활에 대한 반성을 하게 되었다. 첩첩산중 해발 579미터 성거산 꼭대기에서 신앙을 지키기 위해 숨어 지냈던 집터와 흐드러진 야생화를 뒤로하고 우리 일행은 두 번째 순례지인 사사리로 가기위해 버스에 올랐다.
묵주기도를 하고 잠시 휴식을 취하니 벌써 목적지에 도착했다. 초기 한국 천주교회의 밑거름이자 초석이 되었던 하느님의 종 정약종 순교자의 묘가 있었고 옹기종기 늘어선 20여기 후손들의 무덤을 참배하며 참으로 대단한 가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순교자의 묘인 만큼 은총이 많을 것이니 한 가지 지향을 가지고 정성껏 기도하라는 봉사자님의 권유에 따라 나는 우리 가족의 성화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였다. 오늘 하루 좋은 날씨 덕분에 맑은 공기와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하느님과 함께 한 행복한 시간 보낼 수 있게 이끌어주신 주님과 알찬 순례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 모든 봉사자님께 감사드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