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성지순례기
-신평성당, 음샘공소, 매산리공소, 원머리 공소, 솔뫼
박헌일(미카엘)
kotra 가톨릭모임 동우회, 수원교구 구미동 성마리아성당
3월18일 아침 7시50분, 출발 10분전이다. 함께 가기로한 단체회원들중 3명이 아직 도착하질 못했다. 불안한 마음으로 기다리던 늦을것 같았던 선배님 부부가 다행히 출발전에 도착하였고, 나머지 한명은 불가피한 사정으로 불참한채 우리단체 16명을 태운 순례버스는 8시 정각에 만원상태로 당진을 향하여 출발하였다. 오랫만에 봄나들이하는 기분이 마냥 상쾌하였다. 성지순례보다는 소풍가는 기분으로 출발하였다.
아직 봄이기에는 쌀쌀한 바람이 겨울보다 매섭고 바다에 가까워서인지 바람이 제법 옷깃을 여미게하는 날씨속에서 첫번째 도착한 신평천주교회 음샘공소. 신부님이 상주하지 않고 신자들이 모여 기도하고 공소 예절을 바쳤던 소박하고 작은 건물이다. 1885년도에 이미 100명을 넘어 해방이후에는 신자수가 200여명이 넘었다는 매산리 공소에 도착했다. 공소 내부는, 모든 것이 어렵던 시절임에도 하느님에 대한 사랑과 믿음을 고백하던 신자들의 정성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시골 한적한 곳에 초라한 외관을 보고 있으니 공소 보존관리의 필요성이 새삼 느껴졌다. 더불어, 요즘처럼 세련되고 화려한 성당에서 모든 것이 갖추어진채 풍족함을 누리는 우리의 신앙생활이 얼마나 감사하고 행복한 일임을 느끼는 기회가 되었다.
한가지 아쉬운점은 가톨릭 발전 과정의 한시대의 역사적 산물인 공소를 너무 소홀히 하고 있다는 인상이었다. 공소의 간판도 다 퇴색되어 보기 흉하고 공소의 발자취를 알려주는 아무런 안내간판도 없었을 뿐더러 주변의 환경정리도 않되어 있어 이상태로가면 폐허가되어 사라지지 않을까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공소를 잘 관리하여 후대에까지 우리 신앙선조들의 하느님에 대한 사랑을 오랫동안 보여주고 이어갈수 있도록 교회사의 유물로 남기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였다.
신평성당은 웅장하고 아름다운 건물이 눈에 먼저 들어왔다. 우리 일행은 교중미사에 참가하였는데 우리를 반겨주시는 주임 신부님의 따뜻한 인사 말씀에 우리 마음도 따뜻해짐을 느낄수 있었다. 한가지 인상적인 미사풍경은 평화의 인사를 나누는 시간이었다. 대부분 평화의 인사시간에는 주변 사람들과 그저 간단히 목례를 나누는 정도이다. 그런데 신평성당은 머리와 허리를 쭉빼어 손이 닿는 범위의 모든 사람들과 악수하며 인사하는 모습이었다. 참으로 푸근하고 정감가는 모습이었다. 성서에 씌여진 그대로의 평화의 인사를 나누던 신평 본당 신자들의 신앙 생활을 보고 잠시나마 엿볼수 있어서 참으로 기분이 좋았다.
맛있는 점심을 먹고 솔뫼성지로 향했다. 1784년 한국천주교회가 창설된 직후부터 김대건 신부님의 증조 할아버지 비오(1814년 순교), 작은 할아버지 김한현 안드레아(1816년 순교), 아버지 김제준 이냐시오(1839년 순교) 그리고 김대건 신부님(1846년 순교)에 이르기까지 4대에 걸친 순교자가 살던 곳이다. 한국 최초의 사제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탄생지이다. 이곳에서는 신부님께서 직접나오시어 김대건 신부님의 일생에대한 간단한 설명과 영상자료도 보여주셨었다. 훌륭한 경관에 감탄하며 천주교 신자로써의 자긍심과 김대건 신부님에 대한 존경심을 느낄수 있던 시간이었다.
솔뫼성지를 둘러보고 원머리공소를 둘러보았다. 내포지역에서 가장 일찍 교우촌이 형성된 곳으로 이곳에 복음이 전파된것이 1850년대로 알려지고있다. 다른 공소들과 마찬가지로 관리가 않되고 있는 모습이 보기 안타까웠다. 마침 봉사자님과의 인연으로 4명의 음악 선교 단원과 좋은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아침 8시에 출발한 일정이 어느덧 오후 5시30분을 향하고있다. 일요일 오후의 귀경길 고속도로 정체로 많이 밀리지 않을까 걱정되었으나, 당초일정보다는 늦었어도기사님의 훌륭한 운전솜씨로, 비교적 빨리 서울에 도착하였다. 생각보다도 추운 날씨였지만 아주 만족스러운 성지순례였다. 두 봉사자님의 해박하신 지식과 상세하고도 명료한 설명에 다음 성지순례가 기다려진다.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봉사자님!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