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8 배론, 묘재, 서짓골 순례기

2013. 3. 12. 오후 4:18:39

글자

시루의 물은 빠져도 콩나물은 자란다.

 

김동자(안젤라) / 순례자, 도봉동 본당

 

‘띠리리리리리리리~ 띠리리…….’하며 핸드폰 알람이 울린다. 우리는 밥을 빨리 먹고, 외손녀의 아침밥은 마지막으로 배낭에 챙겼다. 딸은 자는 아이를 깨워서 시동을 걸었다. 여유를 갖고 출발했는데 내비게이션에는 빨간색이 보인다. 나는 조급한 마음에 손과 발에 힘이 주어진다. 출발 10분 전에 도착하여 맨 뒤 2층(?)에 앉았다. 박금희 요세피나 봉사자의 천주교 역사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설명이라기보다 명 강의였다. 박수를 보내고 아이와 놀다보니 배론 성지에 도착했다.

신부님은 강론을 통해 “배론 성지의 특징은 황사영 알렉시오가 백서를 작성한 곳이며, 최양업 토마스 신부의 무덤이 있고, 한국 최초의 성요셉신학교가 설립된 곳”이라고 하셨다. 계속해서 “배론 성지는 사제를 양성하는 신학교가 최초로 설립된 곳이고, 배티성지는 신학 교육을 처음 실시한 곳”이라고 아리송했던 내 머릿속을 깔끔하게 정리를 해 주셨다.

나는 배론 성지를 3번째 방문하였기에 낯설지는 않으나, 생각은 완전히 새로웠다. 성지의 3가지 특징을 묵상하고, 양업교 좌우측의 ‘칠성사’와 ‘칠극’을 보고서 지난날을 뒤돌아보았다. 성지 가운데 작은 연못 양지쪽에 움직이지 않고 모여 있는 고기들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도 예수님의 빛을 찾아 배론 성지로 모여들어 주님의 손길을 느끼면서 신학교에서 공부했을 신앙 선조들의 영성을 마음에 새겨본다.

묘재에 도착하니 ‘용소막성당 학산공소’가 반긴다. 인접한 남종삼 요한 성인이 살던 고택도 보인다. 대문을 들어서니 성인의 흉상 좌대에 각인된 활동사항을 읽고 방, 부엌, 화장실, 뒤꼍까지 둘러봤다. 성인의 체취를 맡으면서 고택 뒤에 마련된 ‘십자가의 길’을 걸었다. 그분의 삶을 묵상하기에 정말 좋은 곳이다. 좁은 오솔길에 낙엽과 급경사이면서 일방통행이기에 많은 인원이 이용하기는 무리일 듯하다. 그러나 10여명 정도의 인원이라면 아주 좋은 곳이다.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세 번씩 넘어지시면서 골고타 언덕을 걸으심을 묵상하니 저절로 눈시울이 적셔온다. 오늘은 시간도 부족하여 그냥 견학정도였지만, 다음에 꼭 다시 오겠다. 고택 대문을 닫는데 순례객이 아닌 할머니가 지나가신다. 투박한 손, O형 다리, 구부러진 허리, 검고 주름진 얼굴이 영락없는 시골 할머니였다. 그러나 웃는 모습은 순박하기 그지없다. 김영옥 소화 데레사 자매님은 손 사레로 사진 찍기를 거부하시며 “6․25때 내가 봤는데 여기 집들이 모두 불타버렸는데 이 집만 타지않았구먼유.”하시면서 남종삼 성인의 고택을 가리킨다. 봉사자가 천주교 신자냐고 묻자, “물론이지유. 꾸르실료 교육도 받았지유.”하시면서 배시시 웃으시는 모습에 나는 정중히 인사드리고 발걸음을 돌렸다.

순례는 성령의 인도를 받으며 그리스도를 통하여 아버지께로 가는 여행이다. 내년 꽃피는 춘삼월에 남편과 함께 이곳을 다시 찾아 배론 성지에 가려진(?) 묘재성지의 십자가 길도 걷고 학산공소에서 미사도 봐야겠다. 신앙의해(2012. 10. 11~2013. 11. 24)를 맞아 주님을 만나고, 고백하고, 기념하고, 증언하는 시간을 만들어야겠다. 나의 신앙생활은 콩나물 시루 같다. 열정과 결심은 며칠 못가서 식고, 유명무실해 진다. 그렇지만 이번 순례를 통해 또다시 결심해 본다. 시루의 물은 곧바로 빠지지만 그 안에 있는 콩나물은 무럭무럭 자라는 것과 같이 나도 모르게 내 신앙도 자라겠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요한4.14) 성경 구절을 생각하면서 나는 두 손을 모았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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