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은 안개 속에서도 보이시겠지
김용준(바실리오)/순례자 · 도봉동 성당
버스 차창에 성에가 끼어 어디쯤 가고 있는지 모르겠다. 3040요금제 스마트폰으로 내 위치를 잘 못 찼겠다. 유리창을 닦으면 금방 눈에 백내장이 낀듯하다. 차가 흔들리지 않는 것으로 봐서 고속도로를 진입했나 했더니 벌써 행담도 휴게소에 멈춘다.
안개가 너~~~무 너~~~무 자욱하다. 바닥이 살얼음으로 미끄럽다. 이영애(데레사) 봉사자는 ‘혹여 눈이 오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다행’이란다. 일행은 커피, 호떡, 군 감자, 빼빼로 같은 고구마 튀김 등 간단히 먹을거리를 들고 버스에 오른다. 시골길로 접어들었다. 버스 한 대 겨우 지나갈 수 있는 논두렁길을 앞으로 갔다 뒤로 갔다를 반복하며 아슬아슬하게 돌고 돌아서 여사울 성지에 도착했다.
이곳에도 안개는 아직 안 개였다. 우리 순례자는「십자가의 길」을 걸었다. 듣기에 조금은 좋지 않은 빠삭거리는 눈을 밟거나 배수로 뚜껑을 밟으며 조심스레 1처, 2처 순서대로 묵상한다.
겨자씨만큼이나 작은 물방울이 얼굴을 간지럽힌다. 주위의 나지막한 소나무는 쌓인 눈 때문에 마치 내 몸에 맞지 않는 무스탕 외투를 입은 것처럼 가지가 축축 늘어져 있다. 각 처의 조각상에도 눈이 덮여있다. 옷 벗김 당하시고 차가운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셨는데 북풍한설까지 몰아치니 더 추우시겠지. 그런 예수님을 품에 안으신 성모님의 가슴은 얼마나 아프셨을까.
14처를 마치고 야외미사 장소을 둘러보는데 신혜숙(율리안나) 봉사자가 나도 모르게 한 장 찍어주셨다. 미사에 참례하기 위해 성당으로 돌아오는 길에 두 분이나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기도 했다.(깔깔 껄껄)
장동준(라파엘) 신부님은 자칭 타칭 핸섬하시다. 강론 중에 청진기에 대한 말씀을 하셨다. “본래 청진기는 환자의 몸속 상태를 소리로 진찰하는 것이지만 신앙인의 영혼과 마음을 진찰할 수 있는 청진기는 아직 없다. 사랑과 용서의 소리, 봉사와 회개의 소리, 자선과 배려의 소리, 미움과 질투의 소리, 집착과 욕심의 소리 등 좋고 나쁜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청진기가 있으면 좋겠다.”고 하신다. 내 마음은 어떤 소리일까 궁금하면서도 나쁜 소리가 많을 것 같아 걱정된다.
여사울 성지는 이존창(루도비코) 곤지자의 생가 터로 알려진 곳이다. 성인은 충청도에서는 최초로 이곳에 복음을 전파했고, 김대건․최양업 두 신부님의 집안도 입교시켰다. ‘충청도의 사도’라고 불리는 이 곤지자는 양인 신분으로 여러 지역에 신앙 공동체를 형성, 확대하였다. 또 주문모 신부님의 입국을 적극 도왔고, 신유박해 때 공주 감영에서 ‘모두 천국에서 만나자’는 말을 남기고 순교하셨다.
여사울 성지 인근에 있는 대흥관아로 이동했다. 타 지방 관아와 별로 다를 바가 없었으나 글자도 선명한 ‘척화비’와 ‘의좋은 형제’상이 특징적이다. 척화비는 흥선대원군이 전국에 세운 비석으로 서양의 문물에 화합할 수 없다는 내용이다.
또 ‘의좋은 형제’(형 이성만과 동생 이순) 이야기는 초등학교 2학년 2학기 국어 교과서에 나오는데 내용은 익히 알고 있으나 발생지가 이곳인 줄은 예전에 미처 몰랐었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눈을 감는다. 대림시기는 회개(悔改)와 자선을 베푸는 때이다. 회개는 굽은 길은 곧게 펴고, 골짜기는 메우고, 울퉁불퉁한 길은 평탄하게 하듯이 죄로 인해 멀어진 하느님과 이웃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바로잡는 것이 아닐까. 그럼 나는 진정으로 회개하고 있는가.
「십자가의 길」을 걸으면서 내 뒤를 돌아봤다. 나는 보고 싶어도 못 보지만 주님은 안개 속에서도 보이시겠지. 나의 일거수일투족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