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1일 삼덕고개, 은이, 미리내

2012. 11. 12. 오후 1:43:30

글자

삼덕고개를 넘으면서

 

김용준(바실리오) / 순례자 · 도봉동 본당

 

아내와 함께 은이 성지에서 양형권(바오로) 신부님의 특별 미사를 참례하고 일용할 도시락을 받아 들었다. ‘순교자현양회’라고 인쇄된 단풍처럼 빨간 조끼를 입고 깃발을 흔드는 봉사자가 보였다.

스레이트 지붕의 아주 허름한 이쑤시개 공장과 담장을 공유하고 있는 열악한 여건의 은이(隱里)성지를 다시 찾으리라 다짐하고 삼덕고개 순례 길에 올랐다.

middle-old인 나는 아내의 손을 잡고 선두 그룹을 따랐다. 우리로 인해 순례길에 피해를 주면 안되겠기 때문이다. 주위에 보이는 아름다운 단풍 한 닢, 하찮은 들꽃 하나, 빨간 고추잠자리까지도 하느님이 만드심을 생각하니 더욱 아름답게 보인다.

내가 지금 걷고 있는 이 삼덕고개 길(16km)은 선조 신앙인들이 새남터에서 순교하신 김대건(안드레아) 신부님의 유해를 등에 업고 걸었던 길이요, 아들을 잃은 어머니가 기도하며 걸었던 길이란다.

선조 신앙인들의 깊은 신심을 묵상하며 걷다보니 첫 번째 고개인 신덕(信德)고개라는 표지석이 보인다. 모두들 땀을 훔치면서 ‘80대 형제님이 봉헌하여 고개마다 비석을 세웠다.’는 봉사자의 설명을 들은 다음, 신덕송을 바쳤다. 낙엽이 쌓이고 자갈이 구르는 급경사 길을 조심조심 서로 격려하면서 안전하게 내려왔다.

길가에 핀 억새도, 잎은 떨어지고 감이 주렁주렁 달린 감나무도, 샛노란 잎의 드레스를 입은 은행나무도, 금방이라도 가재가 기어 나올 듯 맑은 도랑물도 모두가 하느님의 작품임을 느끼면서 걷다보니 잔디가 잘 깎여진 묘지가 보였다. 봉사자의 안내에 따라 그 주변에 둘러앉아 도시락을 먹었다. 들고 올 때는 귀찮았지만 이렇게 꿀맛일 줄이야.

두 번째 망덕(望德)고개는 600여 고지다. 나무가 썩어서 쓰러져 길을 막고 있고, 장마로 고랑이 패인 험한 길이다. 지금은 몇 년 전보다도 길이 많이 좋아졌다고 봉사자가 들려준다.

배낭과 DSLR 카메라를 메고 아내를 끌어주다 보니 철도 침목으로 만든 계단은 쬐끔(?) 힘들었다.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 아래 뫼’지 별 수 있겠어? 망덕고개에서 김대건(안드레아) 신부님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봉사자로부터 듣고 망덕송을 함께 바쳤다.

휴식 후 출발한 우리는 임도(林道)를 따라 내려오다가 교우가 운영한다는 찻집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다음, 행정구역상 용인시 처인구 해곡동을 지나 도로를 걸었다.

아내의 발가락이 괜찮은지 수시로 확인하면서 말이다. ‘선조 신앙인들은 옛날에 험한 밤길을 몰래 다녔을 텐데 그때에 비하면 내 발 조금 아픈 것 정도야 아무것도 아니다.’면서 오히려 나를 위로한다.

나는 속으로 ‘여보, 고마워.’하면서 손을 꼭 잡았다. 별로 힘들지 않게 애덕(愛德) 고개에 도착하여 애덕송을 바친 우리는 미리내까지 500m 남았다는 안내석을 보고 가벼운 마음으로 내려왔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이 없었다면 천주교가 시작되지 않았고, 순교자들의 순교가 없었다면 천주교가 성장하지 못했을 것이다.「신앙의 해」를 맞아 전국의 성지를 순례하면서 선조 신앙인들의 신심을 배우고 주님의 은총으로 양파 자루 같은 나의 신심을 주님의 은총으로 가득 채우겠다고 다짐한다. 아울러 순례확인 도장을 받도록 수고하신 봉사자들께 감사드린다.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

일반순례자 순례기*

목록 전체보기 →
12/16 여사울, 대흥관아 처형지13.03.12조회 8911/18 배론, 묘재, 서짓골 순례기13.03.12조회 8910월 21일 삼덕고개, 은이, 미리내12.11.12조회 939월 16일 황새바위, 중동성당, 장깃대나루12.11.12조회 888월 19일 어은동 공소12.11.12조회 857월15일 우곡성지, 홍유한 고택12.07.31조회 926월 17일 치명자산,초록바위,서천교,숲정이 성지순례기12.06.27조회 945월 20일 성거산, 사사리 성지순례기12.06.27조회 844월 15일 풍수원, 부엉골 성지순례12.06.27조회 822월28일 해미,한티 성지순례기12.03.22조회 903월18일 신평 원머리,음샘,매산리 공소와 솔뫼 성지순례(4월회보)12.03.22조회 752/19해미, 한티 성지순례(2012년 3월 회보)12.02.29조회 74한티고개, 해미성지[1]12.02.24조회 861/15서울시내성지순례(2012년 2월 회보)[1]12.02.02조회 8712/18남양성지,백학교우촌(2012년 1월 회보)12.01.04조회 6911/20 용소막, 대안리 공소(2011년 12월 회보)12.01.04조회 6110/16 여우목, 마원 (2011년 11월 회보)[1]12.01.04조회 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