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산성지와 천호성지를 다녀와서~
문정숙 (이사벨라) / 순례자 ·명동성당
오래전에 지인의 소개로 현양회 성지순례를 알게 되었고 1년 넘게 주변 사람들과 같이 즐겁게 다녔습니다. 그러다가 뒤늦게 공부도 하게 되고 개인적인 일들도 생기다 보니 그동안 많은 성지를 다녔다는 생각도 들고 현재에만 충실하자 싶어 한동안 순례를 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공소나 성지들이 많이 개발 되고 기존의 성지도 새로운 모습으로 바뀌었다는 소식도 들려오니 다시 성지를 찾고 싶어졌습니다.
전날 마신 커피 탓인지 새벽4시에 저절로 눈이 떠졌는데 한 시간 넘게 오른쪽으로 한번 왼쪽으로 한번 뒹굴다가 습관처럼 일어나 TV를 켰는데 “천호성지”가 나왔습니다. ‘어? 내가 오늘 갈 곳이 천호성지 인데!’ 너무 놀라 눈을 비비고 일어나 “내가 헛것을 본 것 인가? 아니면 잠이 덜 깬 거야” 혼자말로 중얼거리며 다시 봤더니, 일요일 아침 6시에 M본부에서 하는 고향 어르신의 세월 나들이 “늘 푸른 인생” 이라는 방송이었습니다. 호남의 대표적인 천주교성지로 순례자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곳이며 더불어 질 좋은 농산물과 인심좋은 사람들이 있는 전북 완주군 비봉면 내월리 천호성지권역을 찾아가는 내용이었습니다. 3개의 종교 (원불교, 개신교, 천주교)가 합심하여 지역에서 지원도 받아 순례길을 만들었다고 뽀빠이 이상룡의 사회로 간단한 성지 소개가 나왔습니다. 솔직히 우연의 일치일수도 있지만 기분이 묘했습니다. 한편으로는 신기하기도 하면서 “재미있는 하루가 되겠구나.” 하는 기대감과 약간의 설렘을 가지고 성지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습니다.
버스 안에서 성지 안내 인쇄물과 103인 순교자 호칭 기도문을 받고 여산성지를 향해 출발했습니다. 여산성지를 거쳐 여산 동헌, 백지사터, 숲정이 등을 순례하고 천호성지를 가는 일정이었는데 봉사자님의 자세한 설명과 재미있는 유머를 함께 들으며 더운 날씨도 잊고 감사 기도와 함께 성지로 향했습니다. 3대의 버스로 100명이 넘는 인원들이 움직이는 바람에 작고 예쁜 여산성당의 신자들과는 같이 미사를 드릴 수는 없었지만, 서울에서 내려간 사람들만으로도 성당이 거의 찼습니다. 미사가 끝나고 여산성지 주임신부님의 재미있는 강의와 함께 개인적으로 오면 알기 힘든 성지와 성당에 대한 여러 가지 설명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성지 개발이 한창인 여산성지는 예전의 모습으로 복원준비중이라는 신부님과 봉사자님의 말씀을 듣고 개발이 끝나면 꼭 다시 한 번 와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마지막 더위가 시위나 하는 것처럼 몹시 덥고 햇볕은 따가웠지만 사람들의 얼굴은 성지의 기운 탓인지 모두들 활짝 웃음을 띠고 있었습니다.
여산성지에서 맛있는 점심을 먹고 천호성로 향했습니다. 천호성지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은 백성들이 교우 촌을 이루고 170여 년 동안 ‘하느님을 부르며’ 살아온 신앙의 터전이라고 합니다. 전주 숲정이에서 순교한 여섯 성인 중 네 분이 천호성지에 묻히셨으며 여산에서 순교한 무명 열 분의 순교자가 묻혀있는 곳 이라고 합니다. 봉사자님의 설명과 함께 천호성지로 향하는 길은 말 그대로 구불구불 첩첩산중 이였습니다. 마치 강원도 깊은 산속을 들어가는 느낌 이였습니다. 버스에서 내려 부활성당으로 이동하는 사람들의 얼굴은 모두들 밝게 빛이 났습니다. 여산성지와 다르게 천호성지는 깊은 산속에 위치해 있었고 성지 아래 교우촌은 기와집과 골목길이 정말 아름답고 30도가 넘는 날씨지만 살짝 살짝 나무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이 더위를 잊게 했으며 골목길옆 담장너머에는 가을을 재촉하는 감과 밤과 대추 열매가 탐스럽게 익어가고 있었습니다. 열매들을 바라보며 괜히 내 마음도 풍요로워졌습니다.
하루 동안의 성지순례였지만 신기한 우연과 함께 정말 오랜만에 가는 성지 순례는 저에게 많은 감사와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준 소중하고 귀중한 시간이었습니다.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성지 신부님과 여러 봉사자님들께 이글을 통하여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소중한 만남과 시간을 주신 하느님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