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5/19서짓골,도앙골 순례

2013. 10. 23. 오전 10:3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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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5월 19일

하부내포 성 다블뤼 안토니오 외 4분 성인의 발자취를 따라…..

 

 

오완수(바오로) / 성지안내봉사자

 

찬미 예수님! 성지순례란 나의 삶에 다가오는 피정의 시간입니다. ‘왜 사는가?’ 바쁜 일상을 살아가면서 삶에 지친 내 자신에게 가끔씩 던지는 도전적인 물음에 답을 찾기 위해 일상을 떠나 하느님을 만나고 순교자들을 만나는 시간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그렇게 살고 있는가? 무엇을 향한 나의 인생인가? 나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가? 나의 현재 위치는 어디인가?

이런 질문에 때로는 고독하지만 역동 적인 답을 주어 나를 변하게 하는 시간이 저에게는 성지순례의 시간입니다. 오늘 저는 기쁜 마음으로 사당역으로 달려갔습니다. 150년 전 성인들의 발자취를 찾으러 버스 2대로 80명의 형제, 자매들과 함께 기도 하면서 도착한 곳은 하부 내포 만수리 공소 신부님의 안내로 5성인의 흔적을 찾아 갔습니다.

갈매못은 처참했던 한국 교회의 순교사를 생생하게 증거하고 있는 땅입니다. 1866년 극심하던 병인년 대 박해 때에 신자들의 희생을 조금이라도 줄여보려고 스스로 자수하여 체포되신 세 분의 프랑스 성직자와(다블뤼 안 안토니오 주교, 위앵 민 루카 신부, 오메트르 오 베드로 신부), 당시 교회의 중추 인물이셨던 두 분(황 석두 루카, 장주기 요셉)의 회장님이 주님 수난 성 금요일인 3월 30일에 군문효수를 당하십니다. 사제와 평신도가 함께 피를 흘리며 하느님께 나아 가셨습니다. 군문효수형으로 순교한 다섯 분 성인의 머리를 사흘 동안 장깃대에 매달았다가 4월 3일 5위 성인은 처형장 근처에 사는 외교인들이 다섯 분을 2개 무덤으로 나누어 시신을 모십니다. 얼마 후 황 석두 루가 유해는 후손들에 의해 홍산 삽티에 따로 모셔 졌습니다.

그 후 7월 9일 들짐승들 에게 유해가 훼손이 된다는 소식을 듣고 교우들이 4분의 유해를 파서 배로 운구를 하는데 풍랑과 뇌우가 심하여 바다 위에 8일을 헤매다가 충남 보령시 미산면 평라리 서짓골 담배 밭 한가운데 4개의무덤을 파고 봉분은 하나로 하여 묻고 나서 12일 만에 집으로 돌아갑니다. 현재 그 무덤 건너편 강과 예전의 마을은 저수지로 인해 물속에 잠겨 있습니다. 보령 오천 항 갈매 못에서 4분의 유해를 배에 싣고 8일씩 이나 걸려 서짓골에 안착 하였다니 신앙선조들의 신심에 머리가 숙여지고 감사드립니다.

그 후 1882년 블랑 백신부가 강경에서 4위 유해를 확인하고 , 당시 조선의 정치 상황의 예측 불허로 나가사키로 봉송했습니다. 1882년 11월 6일 순교자들의 유해는 일본 나가사키로 옮겨져 프티장 주교에 의해 오우라 성당 의 제대 옆에 모셔졌습니다. 1894년 5월 22일 프랑스 군함 포르페호를 이용 하여 4위의 유해는 제물포항을 거쳐 다시 한국으로 돌이와 용산 신학교 경당에 모셔 지게 되었습니다. 1898년 5월명동 대성당 축성식이 거행되고 순교자들의 유해는 1900년 명동 성당 지하 경당으로 왔다가, 1967년 10월 22일 절두산 성지가 준공 되고 성당 지하에 마련된 유해실에 옮겨 안치 하였습니다

성지순례를 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현양회에서 함께한 순례 여정은 번번이 새로운 느낌을 주는 특별한 시간들이었습니다. 5분 성인의 유해 순례의 길은 우리의 인생길을 대변해주는 여정들이었습니다. 하느님을 향해 나아간 성인들의 삶을 그대로 전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으로 부터 태어나 하느님께로 돌아가야 하는 인생 순례 여정을 걷는 우리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 봅니다.

나는 어디에서 왔으며 어느 곳을 향해 가고 있는가? 그리고 나는 현재 어디에 서있는가? 신앙 선조들이 유해를 옮겼던 발자취를 따라 걸으며 그때 그 당시 사람들의 느낌과 생각은 어땠을까?

묵상하며 걷는 길, 그 길 위에서 나는 무엇을 향해 살아야하는가를 깨달을 수 있는 시간들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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