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9/15주어사터,대감마을(회보외, 김용준)

2013. 10. 23. 오전 10:4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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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어사 터 성지) 2013. 9. 15(일)

 

살아도 좋고 죽어도 좋다

 

여주 성당의 미사시간(10:30)에 여유 있게 도착하였기에 5분 거리인 인근「여주 순교 치명 기념비」를 찾았다. 대리석 기념비 중앙에는 오석(烏石)의 ‘순교자 찬가’가 있고, 그 아래에는 여주 순교자 20명의 명단이 음각되어 있다. 건립배경과 의미에 대한 봉사자의 설명을 들은 다음, 우리는 순교자들을 위해 주모경을 바치고 그들의 영성을 묵상했다. 단독 주택가에 있어 아쉬움은 남았지만, 그래도 추정 처형지에 세워졌다니 다행이다.

골목길을 돌아 성당으로 왔다. 조한영(야고보) 주임신부는 병자성사에 대한 강론을 통해 “고통․죄․죽음 속에서 하느님이 가장 잘 드러나 있다. 예를 들어 자식이 아프면 내가 대신 아프고 싶은 것이 부모 사랑이다. 예수님의 고통도 바로 부모 사랑과 같은 것이며, 예수님의 사랑을 느낄 때 나도 그와 하나가 된다.”고 하신다.

마사 후 한식 뷔페에서 점심을 먹고 계획대로 주어사 터(址)로 향했다. 가는 도로변에는 벼가 따가운 햇빛으로 잘 영글어가고 있다. 1~2주 후면 황금물결을 이룰 것 같다. 계장천을 따라 고개를 넘어 하품리에 도착했다. 봉사자는 “어제 폭우로 인해 계곡물이 불어나 제대로 건널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걱정하면서 출발했다.

마을 어귀에 오니「여주 주어사지 7km」라는 이정표가 보인다. 도랑의 물소리를 들으며 저마다 묵주기도를 바치며 걸었다. 그런데 갑자기 행군 속도가 느려진다. 선두가 그 문제(?)의 도랑을 건너기 위해 신발을 벗고 있다. 그들은 징검다리를 만들었고 일행은 조심조심 건넜다.

무릎 가까이 오는 임도(林道)의 잡초가 우리의 발목을 잡는다. 2/3정도 올라온 듯하다. 모두 한 자리에 모여서 땀을 식힌다. 봉사자는 “주어사는 앵자봉 서쪽 정상 가까이 있었던 절로 지금은 절터도 남아있지 않지만, 한국 천주교회 창설의 직접적인 기원이 된 학문연구 모임인 ‘강학’이 이루어진 곳이다. 강학은 여럿이 모여 공통된 주제를 놓고 서로 질문하고 대답하며 토론하는 학문 연구방법”이라고 설명하기 시작했다. 나와 2명(연신내․반포성당)은 그들을 뒤로하고 내달렸다. 10분 정도 소요된다는 주어사 터를 향해서.

임도는 폭우로 떠내려 온 자갈로 범벅이 돼 있다. 또 도로는 마치 폭격을 맞은 것처럼 시멘트 포장은 많이 깨져있으며, 유실된 곳도 수 개소가 있다. 가도 가도 안내판은 안 보인다. 비 오듯 흘러내리는 땀을 찬 도랑물에 적신 손수건으로 연신 훔쳐낸다. 그래도 우리는 걸었다. 얼마 후 시멘트 포장이 끝나는 개울가에 안내판이 보인다. 반갑다. 숨을 돌리며 인증 샷은 했으나 책에서 보던 주어사 터 표지판은 아니다. 왼편의 오솔길을 따라 더 올라갔다. 깔딱 고개 같은 산비탈을 오르고 도랑을 건너서 드디어 ‘5호 건물지’라는 표지판을 발견했다. 목적지가 가깝다는 의미다. 4호ㆍ3호ㆍ2호. 드디어 ‘주어사’ 표지판을 찾았다. 반갑고 감사함도 잠시일 뿐, 기다리는 일행의 모습이 떠올라 모든 순교자들이 조속히 복자반열에 오르시도록 화살기도만 했다. 우리는 서로 인증 샷을 찍고 되짚어 내려왔다.

100평도 안 돼 보이는 터는 무성한 잡초 한 가운데 숯가마 터가 보인다. 아궁이와 굴뚝이 완연하다. 이런 산 중에 스님이 많을 때는 300여명이나 기거했다니 대단하다. 시골 사랑방은 좁아서 강학 장소로는 걸맞지 않아 넓은 주어사 방을 이용했다니 신앙 선조들 또한 대단하다.

올라 갈 때는 숨이 차고 목적지를 향하는데 급급했으나, 내려올 때는 ‘선조들이 심산유곡에서 강학에 참여한 마음이 어떤 것인가? 어떻게 빛을 받아들였을까?’에 대해 묵상해 본다. 조정에서는 ‘대바구니에 소금을 담는 것 같이 잡아도 빠져나간다.’고 했다니 신앙 선조들의 영성을 어찌 말로 다 표현하랴. 아마도「살아도 좋고 죽어도 좋다.」였을 것이다.

나는 조용히 눈을 감는다. 구 요한 봉사자가 말해준 “나의 친구는 남이 아니다. 나의 반은 제2의 나다. 친구 보기를 나와 같이 하라. 왜냐하면 나와 친구는 몸은 둘이지만 마음은 하나니까.”라는 마태오리치의 교우론이 나의 뇌리를 계속 맴돈다.

 

 

순례자 : 김용준(바실리오)

도봉동 성당

 

 

 

여주순교치명기념비 앞에서 봉사자의 설명을 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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