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11/17배티,백곡공소

2013. 12. 9. 오전 10:26:24

글자

배티성지와 백곡 공소를 다녀와서…….

 

홍미선(마리아 도미니카) / 순례자 · 수원교구 남양성당

 

꼭 가 보고 싶었던 배티성지 였기에 어렵게 시간을 내어 새벽 5시50분 버스에 몸을 실었다. 집이 남양성모 성지 근처이기에 아침 일찍 사당 역까지 늦을까 걱정스런 마음에 노심초사 몇 번이나 잠을 뒤척였다

배티성지는 최양업 신부님이 머물며 사목활동을 했던 성당과 사제관 안성으로 넘어가는 고갯마루에 모셔진 14인의 무명 순교자 묘역 그리고 최양업 신부 기념성당과 14처 등 곳곳에 순교자들의 정신을 기리고 기도하는 산속 깊은 골짜기 마을이었다.

동네어귀에 배나무가 많아 배나무고개 라는 말이 생겨났고 이것이 순수한 우리말로 배티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산속 깊숙이 자리한 박해시대의 전형적인 교우촌이며 유명· 무명 순교자들이 피로 적셔진 거룩한 땅이다.

그리고 조선의 두번째 사제이신 최양업 신부님의 사목 중심지였다. 선종하는 순간까지 한 달에 3일 정도 주무시고 1년에 7000리를 걸어 다니시며 12년 동안 조선의 복음화를 위해 일생을 바친 땀의 순교자다. 순교자들의 박해를 피해 천주교 신앙의 꽃을 피우다 신앙을 위해 피를 흘린 고귀한 땅 배티와 그 인근 교우촌은 신앙의 인근 교우촌들은 신앙의 증거자들과 순교자들의 고향이며 그들이 살아 숨쉬는 고귀한 안식처이다.

배티성지 바로 앞쪽에 최양업 신부 성당 터가 자리 잡고 있었다. 성당 터를 돌아보고 103위 계단을 내려오면서, 희생하고 아픈 이를 대신해 매를 맞고 돌아가신 분들에 대한 존경심이 들었다. 나도 더 많이 베풀고 더 많이 나누고 더 낮은 곳을 돌아봐야 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는 시간이었다.

최초의 조선교구 신학교 자리를 기념하고자 최양업 신부의 동상이 세워져 있고 성당옆 신학교로 쓰였던 곳이 초가집으로 복원되어 있어 아늑하고 평온해 보였다.

최양업 신부님 기념 성당에서의 미사를 보았다. 김웅열 성지 주임신부님의 강론중 ‘신앙은 죽기까지 하느님을 첫째자리로 모시는 것’이라는 말씀이 피부에 와 닿았다. 또한, ‘가슴에 사람을 담지 않고 하느님을 담고 살아라. 사람 중심이 아닌 하느님 중심으로 살아가라’ 는 말씀역시 매우 인상적이었다.

맛있는 점심 식사 후 백곡 공소로 향했다. 백곡 공소에는 병인박해 당시 순교한 윤씨와 밀양박씨 성을 가진 바르바라의 유해가 모셔져 있는데 이들은 서로 시누이와 올케지간이었다고 한다. 요즘의 기준으로 생각하면 친해지기 쉽지 않은 관계인데 말이다. 시누이와 올케가 함께 신앙을 증거하고 묘지도 함께 자리하고 있다니, 참으로 새롭고 정겹게 느껴진다. 신부님의 말씀처럼, 이분들은 하느님을 삶의 중심으로 잡고 살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조용하고 평화롭고 아름다운 백곡 공소에서 기회가 된다면 먼 훗날 이 곳에서의 미사참례를 꿈꾸어 본다.

순례가 끝나고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땀의 순교자였던 최양업 신부님을 생각했다. 하루빨리 최양업 신부님의 시복시성이 이루어지길…. 기도 중에 잊지 말고 기억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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