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강성당과 신앙고백비 순례를 다녀와서......
지난 4월16일은 세월 호 참사로 온 국민이 비탄에 빠진 날이었다.
어른임이 많이 부끄러웠고 고백의 기도 중에 나오는"내 탓이오“란 구절이
정말 공감되는 날 들이었다. 미리 신청한 성지순례의 길에 많은 비는 아니지만 마음을
한층 차분하게 가라 않게 하기에는 충분하였다.
낙동강, 문경, 예천, 화령 등지에서 흘러온 여러 강줄기가 만나는 곳이라 마을 앞 강물이 밀린다하여 물미 또는 거꾸로 거슬러 올라간다는 뜻의 퇴강, 그 강을 내려다보며 서있는 성당은 외부인의 선교가 아닌 마을사람 세분이 자진해서1899년 가실성당 문경공소에서 세례를 받음으로써 이루어진 공동체로 1903년 물미공소로 지정되고 1922년 본당으로 승격된 안동교구 최초의 성당이기도 하다. 한 때14개 공소를 두었던 경북 북부지역 천주교의 중심지 역할을 했던 이 성당은 한국전쟁과 이농현상으로 다시 공소로 1968년 축소되었다가 2003년7월 사벌과 합하여 사벌퇴강 성당으로 승격되어 내려오고 있다 한다. 당시 교회건축물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십자형 건물의 고딕양식의 빨간 벽돌 성당, 기도가 저절로 하고 싶어지는 마음이 생긴다. 경북문화재 자료520호로 지정되어 있기도 하다.
남다른 열정 가지신 박재식토마스 신부님의 집전으로 이뤄진 12미사는 은총그 자체였다. 미사 후 교우들이 준비해주신 음식은 정성과 함께 봄을 마음껏 먹고 온 느낌이다. 서울에서 맛볼 수 없었던 뽕잎나물에 이어 취나물, 마늘쫑, 고추찜, 상주 곳감에 상주 배까지, 정말 불거진 배를 안고 다음 순례지로 떠났다.
두 번째로 들린 곳은 1785년 을사추조적발사건 때 문중박해로 서울에서 낙향한 서광수에 의해 처음으로 복음이 전파되어 1801년 신유박해, 1827년 정유박해, 1866년 병인박해 전부터 김해김씨 집안 김복운의 아들 김삼록(도미니코)이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기 위한 표징을 단단한 바위 위에 새긴 신앙고백비다. 손자인 김순경의 증언으로 1894-1900년 초로 추정된다고 한다. 난 오늘 이곳에서 천주실의의 완성을 보고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선조들의 희생으로 오늘의 우리가 있음을 묵상하며 그곳을 떠나왔다. 오늘 수고하신 모든 분들께 하느님의 은총이 함께 하길 기도한다.
이천십사년 사월 이십팔일 논현동 본당 홍 숙희 마리안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