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리산 / 남양성모성지 순례기

2016. 2. 28. 오후 7:3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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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2.22(화)


출항하는 배는 절대로 빈 채로 떠나지 않는다


겨울이기에 근교인 수락산 성지를 찾았다.

12월 하순이지만 순례하기 좋은 날씨이다.

그러나 간밤에 내린 서리로 인해 철도 침목으로 만들어진 십자가의 길이 미끄러워

조심스레 올라갔다.

최경환 성인의 묘소에는 종도신경(사도신경)과 천주경(주님의 기도)이 각인된 비가 있다.

묵상하며 읽었다. 그리고 주모경을 바쳤다.

무덤에는 손뼈가, 고택성당에는 팔뼈와 다리뼈가 모셔져 있단다.

미사 참례를 위해 내려왔다.


현대식 순례자성당에는 보조의자까지 준비했으니 100명은 넘을듯하다.

이현수 요셉 신부님은 「행복」에 대해 강론하셨다.

“행복하기 위해서는 나의 삶 즉 내가 처한 현실 상황에 대해 불평하지 말고 받아들이자.

또 주님에 대해 마음으로 믿자.”고 강조하셨다.

미사가 끝나고 12월 축일자에게는 성가정상 상본을,

리고 모든 순례자에게는 성지순례 기념 와펜을 하나씩 주었다.

붉은 색은 적색 순교를, 흰색은 백색 순교를, 파란색은 환경을,

노란색은 생명을 의미한단다.

백색은 준비된 양이 바닥났다. 나는 붉은 색을 골라 배낭에 꿰어 달았다.


수리산은 성 최경환(프란치스코)과 복녀 이성례(마리아) 부부가 1년 남짓 기거한 곳이다.

이곳은 가깝기 때문에 매년 1~2번씩 찾아온다.

고택성당에서 성체조배를 하고 미사 참례 후 십자가의 길을 걷고 나면 몸과 마음이 가벼워지기 때문이다.

새해에는 대자와 함께 와야겠다.

「성례 마리아의 집」에서 갖은 점심은 정말 맛있고 푸짐했다.


1시간 30분을 이동하여 남양성모성지에 도착했다.

남양성모성지는 1991년 10월 7일 묵주기도의 동정마리아 기념일에

성모마리아께 봉헌되어 한국 최초의 성모성지로 공식 선포됐다.

성지 전체에 20단 묵주를 펼쳐 놓은 듯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지름 0.7m 크기의 돌 묵주 알들이 4.5m 간격으로 놓여있다.

또 어린 예수님이 어머니 치마폭에 매달린 모습의 성모마리아 상이 인상적이다.


이곳은 슬픈 역사도 간직하고 있다.

1866년 병인박해 때 무명 순교자들의 치명터라는 것을 아는 이는 많지 않은듯하다.

대표적으로 김 필립보와 박 마리아 부부다.

동갑(1812년생)이고 순교일(1868.8.3.)도 같다.

당시 법에는 가족은 같은 날 처형이 금지돼 있었으나

이를 어기고 시행된 것을 보면 법이 문란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840년만 해도 같은 날 처형을 피하기 위해

홍낙민의 손자인 병주(베드로, 1840.1.31. 당고개)와 영주(바오로, 1840.2.1. 당고개) 형제,

손소벽(막달레나, 1840.1.31. 당고개)과 최영이(바르바라, 1840.2.1. 당고개) 모녀를 하루걸러 처형하였다.


돌아오는 버스에서 오늘의 순례 길을 되돌아보았다.

출항하는 배는 절대로 빈 채로 떠나지 않는다는데,

나는 집을 나서기 전에 기도는 했는가?

어떤 생각으로 출발하였는가?

또 순례하면서 하느님과 무슨 대화를 했고

어떤 메시지를 받았으며 무엇을 약속을 했는가?





댓글 1

  • 2016년 2월 29일 오전 5:28

    출항하는배.무엇으로채웠나.잘읽었습니다.++

일반순례자 순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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