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6주간 목요일
제1독서: 창세 9,1-13
복 음: 마르 8,2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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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가 예수님이 누구이신지 묻는 질문에 대하여 서슴없이 대답합니다. “스승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스도는 곧 ‘메시아’라는 뜻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하신 질문에 자신 있게 이렇게 정답을 말해 놓고서도, 예수님께서 당신은 “원로들과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시니까, ‘그래서는 안 된다.’고 하면서 펄쩍 뜁니다.
물론 베드로는 예수님에 대한 사랑과 충성스러운 마음이 누구보다 강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복음에서 베드로의 행동은 예수님보다도 자신에게 마음이 더 쏠려 있어 보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면서 스승께서 누리시는 영광이나 누리고 싶지, 수모와 배척을 당하는 것은 바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흔히 쓰는 ‘야누스의 얼굴’이란 말이 있습니다. 로마 신화에 나오는 두 개의 얼굴과 네 개의 다리를 가진 신을 말하는데, 우리 인간의 부정적인 ‘이중성’을 표현할 때 쓰는 말입니다. 신앙에도 이런 이중성이 있습니다. 늘 예수님에 대한 믿음은 고백하면서도, 희생과 고통은 철저하게 외면할 때입니다. 봉사할 때도 남들 눈에 띄는 일은 좋아하면서도, 숨어서 하는 희생은 하지 않는 경우 우리는 이런 이중성을 사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지, 예수님을 주머니 속에 넣고 다니는 것이 아닙니다. 허상의 예수님을 만들어 놓고 내 편리대로 그저 내가 원할 때 이용하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가 신앙의 삶을 선택하고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했으면 신앙인으로서 희생과 고통도 감수해야 합니다. 신앙 안에서는 고통도 ‘선물’임을 깨달을 때, 비로소 주님의 참된 제자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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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께서 노아를 통해 새로운 시작을 약속하시고, 그 계약의 표징으로 무지개를 구름사이에 두십니다.
이 계약의 말씀을 듣는 우리는 "주님은 하늘과 땅을 굽어보시리라."고 화답합니다. 새로 창조된 백성들은 주님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희망하며 "당신 종들의 자손은 편안히 살아가고, 그 후손은 당신 앞에 굳게 서 있으리이다."는 찬양이 이어집니다. 이 찬양과 희망은 그리스도의 고백으로 우리 모두를 이끕니다.
"주님, 당신 말씀은 영이며 생명이십니다 . 당신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나이다."는 복음환호송에서 우리에게 영원한 구원과 생명을 주시는 그리스도를 맞이하도록 초대됩니다.
카이사리아 필리피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물으셨던 질문은 우리의 삶에서 자주 되뇌어보아야 하는 물음입니다. "너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스승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라고 선뜻 고백했던 베드로도 수난을 통한 영광의 길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비온 뒤에 아름답게 펼쳐진 무지개을 바라보는 우리는 그 찬란함에 빠져 가끔씩 고통의 의미를 놓쳐버릴 수가 있습니다. 주님께서 기꺼이 십자가의 길을 걸으셨던 그 의미를 계약의 표징인 무지개와 연결시켜 묵상해 보고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