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6주간 토요일
독서: 히브 11,1-7
복음: 마르 9,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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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서 늘 셋방을 전전하며 사는 가난한 자매가 있습니다. 오십의 나이를 훌쩍 넘겼지만 한 번도 제집을 가져 본 적이 없이, 재개발 공사에 밀려 여기저기 지하 단칸방을 옮겨 다닌 분입니다. 그분은 입버릇처럼, 어린 시절 가난하지만 이웃과 옹기종기 모여 살던 자신의 초가집이 그립다고 말합니다. 도시 생활의 고단함이 늘 그 자매의 표정 속에 깊이 배어 있습니다.
오늘 복음을 들으면서, 그 자매는 초막 셋을 지어 예수님을 모시고 살고 싶다는 베드로의 이야기가 가장 마음에 와 닿는다고 했습니다. 그저 초막집이라도 좋으니 이리저리 떠날 걱정 하지 않고 어린 시절처럼 그렇게 걱정 없이 살고 싶다고 했습니다. 복음이 전하고자 하는 주석적 의미와는 다른 대답일 수 있지만, 그 자매의 묵상이 그 어떤 나눔보다 깊이 다가옵니다.
산 위에서 베드로는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변모 사건을 체험했습니다. 세상의 어떤 마전장이도 할 수 없을 만큼 예수님의 옷이 새하얗게 빛났다고 했습니다. 생명의 충만함을 드러내는 표현입니다. 그 황홀한 체험 안에서 베드로는 그곳에 주님을 잡아 두고 싶었습니다. 그야말로 머리 둘 곳 없이 예수님을 따라 정처 없이 떠도는 고단한 삶을 멈추고, 초막이라도 지어 그 충만한 기쁨에 머물고 싶었던 것입니다.
사실 그 자매가 어린 시절 가난의 그 고통과 초가집의 불편함을 모를 리 없습니다. 그런데도 그 시절의 삶이 그리운 것은, 사실은 그 고향 집이 아니라, 마음속에 영원히 머물고 싶은 어떤 그리움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그 그리움의 끝이 당신의 영광스러운 모습에 있음을 잠시 우리에게 보여 주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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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말씀은 우리가 기본적인 믿음이 있을 때 하느님을 알아 뵙고 그분과 함께 생활할 수 있음을 들려줍니다. 오늘 제자들의 모습은 비록 부족하지만 주님은 그 부족함을 보시지 않고 그 부족함을 채워 주시고자 당신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보여 주십니다. 이처럼 우리들의 부족함으로 인해 주님을 하느님의 편에서 멀어지게 될 때는 항상 다양한 모습으로 당신을 보여주시고 찾아오십니다. 그 순간을 잘 알아 들어 라고 재차 말씀하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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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
오늘 산에 오르신 예수님의 모습이 변하신 것처럼 그분을 만난 우리의 모습도 변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더니 달라졌다는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어떻게 변해야 할까요? 먼저 표정이 밝아야 합니다. 빛이신 분이 안에 계시니 얼굴이 환하게 밝아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요. 미소는 충만한 기쁨에서 생깁니다. 기쁨은 주님이 내 안에 계시다는 표지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항상 기뻐하며 밝게 웃기를 원하십니다. 복음은 기쁜 소식입니다. 기쁜 소식은 기쁜 얼굴로 전해야 합니다. 밝은 미소는 상대방의 가슴을 열고 맑은 산소를 들여보내는 것과 같다고 합니다. 미소는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표지인 동시에 누구에게나 사랑 받을 수 있는 손쉬운 방법입니다. 그리고 말을 다정하게 해야 합니다. 자신의 마음이 가장 쉽게 드러나는 것이 말입니다. 상대방에게 직접 영향을 끼치는 것도 말입니다. 인간관계의 대부분은 말로 이루어집니다.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들 주고 위로하고 격려해야 합니다. 나쁜 말은 입에 담지 말아야 합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어 오신 분께서도 이렇게 당부하셨습니다. “여러분의 말은 언제나 정답고 또 소금으로 맛을 낸 것 같아야 합니다.”(콜로 4,6)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들어주고 다정하게 격려해야 합니다. 늘 밝게 웃고 다정하게 말할 때 세상은 우리를 그분의 제자로 알아볼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