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에서 ‘코르반’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코르반’이란 말의 뜻은, 유다인들이 돈이나 재산 등 자신의 소유물을 하느님께 봉헌한다는 일종의 서약문입니다. 이렇게 코르반으로 바쳐진 재물은 신성한 것으로 여겨져 속인들이 사용하지 못하였습니다. 의미상으로 보면, 코르반은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께 자신의 것을 온전히 바치고자 서원하는 순수한 제사적 관습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늘 복음에서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을 꾸짖은 것은 이 사람들이 이를 악용한 데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이웃이 어려운 처지에 빠져 있어도, 심지어 부모가 도움을 청해도, 그들은 ‘코르반’이라고 하면서, 자신이 가진 재물을 나누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회피하는 수단으로 이용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곧, 코르반이라는 말로 ‘종교적 가면’을 쓰고 자신의 체면이나 살리려고 이용한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가 화려한 성전을 지어 놓고 “주님을 위해서 봉헌한 것입니다!”라고 하고는, 실제로는 가난한 이들에게 위화감을 주고, 가진 자들만의 교회로 만든다면, 이를 두고 현대판 ‘코르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성당에서 기도할 때 ‘주님, 사랑합니다. 저의 것은 다 주님의 것입니다!’ 하고 고백하면서, 가난한 이웃에게 인색하다면, 이것 또한 주님 앞에 ‘가면’을 쓰고 있는 것이 됩니다.
우리가 말로만 무성하게 자신을 치장하면서 사랑은 실천하지 않는다면, 종교적 체면치레를 위해 바리사이들이 ‘코르반’을 외치고 있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 태도는 어떠한지요?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늘 복음에서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을 꾸짖은 것은 이 사람들이 이를 악용한 데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이웃이 어려운 처지에 빠져 있어도, 심지어 부모가 도움을 청해도, 그들은 ‘코르반’이라고 하면서, 자신이 가진 재물을 나누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회피하는 수단으로 이용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곧, 코르반이라는 말로 ‘종교적 가면’을 쓰고 자신의 체면이나 살리려고 이용한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가 화려한 성전을 지어 놓고 “주님을 위해서 봉헌한 것입니다!”라고 하고는, 실제로는 가난한 이들에게 위화감을 주고, 가진 자들만의 교회로 만든다면, 이를 두고 현대판 ‘코르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성당에서 기도할 때 ‘주님, 사랑합니다. 저의 것은 다 주님의 것입니다!’ 하고 고백하면서, 가난한 이웃에게 인색하다면, 이것 또한 주님 앞에 ‘가면’을 쓰고 있는 것이 됩니다.
우리가 말로만 무성하게 자신을 치장하면서 사랑은 실천하지 않는다면, 종교적 체면치레를 위해 바리사이들이 ‘코르반’을 외치고 있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 태도는 어떠한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