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같으면 그렇게 하겠다. / 홍문택 신부
-‘오늘은 잔칫날이었습니다’에서 옮김-
“내가 엄마라면
‘얘! 해가 떳다. 일어나거라’고 얘기하지 않겠다.
‘얘! 저 해 좀 봐라. 부지런도 하지? 벌써 얼굴을 깨끗이 씻고 널 보잖니? 얼굴이 새빨갛지? 부끄러운가 보다’라고 얘기하겠다.
내가 아빠라면
‘얘! 아빠 구두 좀 닦아라’고 얘기하지 않겠다.
‘얘! 네가 아빠 구두를 닦아주면 종일 신이 나더라. 빤질빤질한 구두코에 네 얼굴이 비치는 것 같거든. 그래서 흙 묻을까 먼지 묻을까 조심스레 걷게 되지’라고 얘기하겠다.
내가 혼인 미사 해설자라면
‘신자 아닌 분은 영성체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하지 않겠다.
‘세례받은 신자 분 중에 성체를 영하실 분은 앞으로 나오십시오’라고 말씀드리겠다.
내가 구멍가게 주인이라면
손님이 문에 들어서자마자 ‘뭐 사시겠어요?’라고 묻지 않겠다. ‘날씨가 좀 춥죠? 오늘은 하늘이 참 맑죠?’라는 말을 건네 주겠다.
내가 대통령이라면
국민들이 보는 TV 카메라 앞에서 나 ㅇㅇㅇ는‘이라고 얘기하지 않겠다. ’저 ㅇㅇㅇ는‘이라고 얘기하겠다.
내가 국회의원이라면
의사당 마이크 앞에서 ‘본 의원 …’이라고 얘기하지 않겠다. ‘저는 …’ 이라고 얘기하겠다.
그리고 … 내가 신부라면
나더러 좀 더 신부답게 살라고 하겠다.”
짧은 글이지만 많은 생각을 만들어 내는 글입니다. 우리는 이 글을 통해서 나 자신을 다시 한번 되돌아보고 내가 개인적으로나 공동체 앞에서 자신을 낮추고 상대를 존경하는 언어를 쓰고 있는지 꼼꼼히 살펴보았으면 합니다. 우리 속담에 ‘오는 말이 고와야 가는 말도 곱다’ '말 한마디에 천 냥 빚도 갚는다.' 라고 했습니다.
'탈무드'에 혀에 관한 우화가 실려 있습니다.
❰어느 날 왕이 광대 두 명을 불렀다. 한 광대에게 "세상에서 가장 악한 것을 찾아오라" 고 하고 다른 광대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선한 것을 가져오라"고 명하였다. 두 광대는 세상 곳곳을 돌아다니다 몇 년 후 왕 앞에 나타나 찾아온 것을 내놓았다. 공교롭게도 두 사람이 제시한 것은 모두 '혀'였다.❱
말은 입 밖으로 나오면 허공으로 사라진다고 생각하기가 쉬우나 그렇지 않습니다. 말의 진짜 생명은 그때부터 시작됩니다. 글이 종이에 쓰는 언어라면 말은 허공에 쓰는 언어입니다. 허공에 적은 말은 지울 수도 찢을 수도 없습니다. 한 번 내뱉은 말은 자체의 생명력으로 공기를 타고 번식합니다. 말은 사람의 품격을 측정하는 잣대라고 했습니다. 품격(品格)의 품(品)은 입구(口)자 셋으로 만든 글자입니다. 입을 잘 놀리는 것이 사람의 품위를 가늠하는 척도라는 것입니다.
말에 관한 성경 말씀을 모아 보았습니다.
*여러분의 입에서는 어떠한 나쁜 말도 나와서는 안 됩니다. 필요할 때에 다른 이의 성장에 좋은 말을 하여, 그 말이 듣는 이들에게 은총을 가져다줄 수 있도록 하십시오. (에페 4, 29)
*사람은 제 입이 맺는 열매 덕에 좋은 것을 먹게 되지만 배신자들의 욕망은 폭행으로 치닫는다. 입을 조심하는 이는 제 목숨을 보존하지만 입술을 열어젖히는 자에게는 파멸이 온다. (잠언 13, 2-3)
*상냥한 말은 꿀송이, 목에 달콤하고 몸에 생기를 준다. (잠언 16, 24)
*혀에 죽음과 삶이 달려 있으니 혀를 사랑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는다. (잠언 18, 21)
*“선한 사람은 마음의 선한 곳간에서 선한 것을 내놓고, 악한 자는 악한 곳간에서 악한 것을 내놓는다. 마음에서 넘치는 것을 입으로 말하는 법이다.” (루카 6, 45)
영국 유명 작가 '조지 오웰'은
"생각이 언어를 타락 시키지만 언어도 생각을 타락시킨다“ 고 말하였습니다. 나쁜 말을 자주하면 생각이 오염되고 그 집에 자신이 살 수밖에 없습니다. 말을 해야 할 때 하지 않으면 백 번 중에 한 번 후회하지만, 말을 하지 말아야 할 때 하면 백 번 중에 아흔아홉 번 후회한다고 합니다. 말은 입을 떠나면 책임이라는 추(錘)가 기다리며, 덕담은 많이 할수록 좋지만 잘난척 하면 상대방이 싫어하고 허세는 한 번 속지 두 번 속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품위는 마음만 가지고 있어서도 안 됩니다. 반드시 실천에 옮겨야 합니다. 앞에서 할 수 없는 말은 뒤에서도 하지 말고, 흥분한 목소리 보다는 낮은 목소리가 더 위력이 있습니다.
우리 모두 상대를 먼저 배려하고 존중하는 언어를 구사(構思)하여 신자답게, ‘역시 천주교 신자(하느님의 자녀)라서 달라!’라는 칭송받는 우리가 되도록 합시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