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신자든, 가톨릭 신자가 아니든 김수환 추기경님은 우리들 맘에 자리잡고 계셨던 분이란 생각이 듭니다. 종교를 갖기 전에 저는 그분의 이름, 행적등에 관한 얘기를 책이나 매스컴등을 통해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세례를 받고, 종교생활을 하면서 가톨릭 신자에게는 교황님, 추기경님, 주교님, 신부님이 얼마나 소중한 분들이란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얼마전에 김수환 추기경님이 선종하셨을 때에, TV를 잘 보지 않지만 추기경님의 얘기가 궁금해 평화방송을 켰습니다. 다음날 성당에서 명동성당에 연도를 드리러 간단 말에 너무 가고 싶었지만 가지 못해서 아쉬웠던 생각이 납니다. 저녁에 집에 와 바로 평화방송을 시청하면서 추기경님의 지금까지의 생애, 하셨던 업적,행적,인터뷰, 선종하시기 전의 최후 육성등을 보면서 얼마나 펑펑 울었나 모릅니다. 예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가슴 아팠던 맘이 다시 들었습니다. 왜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보지도 못했고, 어떤 분인지도 잘 모르는 상태였지만 TV에서 나오는 장면, 그분의 인터뷰 내용을 들으면서 맘에 절절하게 뭔가가 느껴졌던 것 같습니다. 본 장면을 보고 또 보고, 또 듣고 계속 빠져들어 봤던 기억이 납니다.
추기경님의 "너무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고맙습니다. 서로 화해하고 사랑하십시오."라고 했던 말씀. 지금도 맘으로 항상 생각하며 살게 됐습니다. 그분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싶어 집에 있던 저희 아들이 읽었던 "혜화동 할아버지"를 보고 있던 차에 추천도서로 추기경님에 대한 책을 읽게 됐습니다. 너무나 인자하신 미소가 아름다운 모습이 저를 정말 평화롭게 만듭니다.
1951년에 사제수품, 1968년 서울대교구장 착좌, 1969년 추기경. 다른 누구보다 빠르고, 젊은 나이에 추기경까지 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추기경님은 옹기장수의 아들로 태어나, 본인의 의지가 아닌 어머님의 의지로 신학교에 가기도 했으며, 학도병으로 간 전쟁터 , 힘든 신문사를 꾸려가기 위해 밀린 구독료도 받으러 다녔으며, 박정희 유신정권과의 충돌, 독재정권과의 갈등, 험난한 서울대교구장 30년등등... 셀 수 없는 많은 일들을 겪으셨던 분이란 것을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됐습니다. 그 많은 힘든 일을 겪으면서도 추기경님은 한 번도 싫다고, 저는 못합니다라고 그리고 포기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셨습니다. (저는 조금만 힘들어도 불가능이나, 포기를 생각하게 되는데요^^)
추기경님은 항상 하느님께 가면서 "주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기소서.지극하신 사랑으로 이 죄인을 불쌍히 여기소서"라는 기도만을 바쳤다고 말씀하십니다.또한, 야훼의 부르심에 응답한 아브라함처럼 "순명"하겠다는 마음외에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으셨다고 하십니다. 신앙인의 삶을 "예수님처럼 세상 사람들을 위해 나 자신을 온전히 내놓는 것"이라고 얘기하셨던 분이십니다. 그리고, 힘든 일이 있을 때에는 나에 대해 모든것을 알고 계시는 하느님 앞에 가서 기도로 지탱하는 방법 밖에는 없다고 하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처럼 살고 싶었고, 예수님과 함께 살고 싶었던 분. 신부가 된 것이 살아오면서 가장 잘했다고 하신분. 내 뜻대로가 아니라 하느님의 뜻대로 모든 것을 순명하면서 받아들이고 이겨내셨던 분에게 많은 감사와 사랑을 보냅니다. 마지막으로 그분이 하셨던 말씀중에 지금의 제가 맘속에 새기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가치 기준은 그가 얼마나 가졌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이뤄집니다. 그리스도는 아무것도 지니지 않았으나 그 누구보다도 부유했습니다. 그것은 참사랑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참사랑은 이웃을 위해 자신을 바치는 나눔의 삶입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