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바의 성 안토니오 사제학자 기념일

2011. 6. 13. 오전 4:56:58

글자

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영어를 배울 때 많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 저에게 어려웠던 것은 영어는 한국어와 어순이 다르다는 것이었습니다. 한국어는 동사가 제일 마지막에 나옵니다. 그래서 말을 끝까지 들어야 의미를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영어는 동사가 주어 다음에 나옵니다. 한국말로는 ‘나는 사과를 먹습니다.’이지만 영어는 ‘나는 먹습니다. 사과를’이라고 표현합니다. 이것이 어찌 보면 단순한 것 같지만 말을 하는데, 문장을 번역하는데 어려움을 줍니다. 결국 영어를 잘 하려면 영어의 어순에 익숙해야 합니다.

신앙인들은 세상의 법과 하느님의 법 사이에서 살고 있습니다. 세상의 법은 물질, 명예, 권력을 추구합니다. 경쟁과 싸움에서 승리를 해야만 많은 것을 차지할 수 있습니다. 세상의 법은 1등은 기억하지만 2등은 별로 기억하지 않습니다. 세상의 법은 멀리 떨어져있는 가난한 사람, 굶주린 사람, 아픈 사람들에 대해서 큰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나의 가족, 나의 직장, 나의 나라가 우선입니다. 세상의 법은 많은 능력과 자격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행복은 성적순, 능력순, 명예순, 권력순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의 법에는 낙오자가 생기고, 밀려나는 사람들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하느님의 법은 양보, 겸손, 희생, 사랑을 이야기 합니다. 행복은 물질, 명예, 권력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고 말을 합니다. 적자생존, 자연도태와 같은 방식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는 우리가 서로 나누기만 한다면 우리가 모두 풍요롭게 살 수 있다고 말을 합니다. 가난한 사람, 병든 사람, 굶주린 사람은 그들의 죄가 아니라고 이야기 합니다. 우리의 몸은 여러 지체로 이루어져있듯이, 우리의 몸이 아프면 병원에 가듯이 사람들 모두는 하느님의 중심으로 한 몸을 이룬다고 이야기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가난한 사람, 아픈 사람, 병든 사람을 내 몸처럼 돌보아야 한다고 말을 합니다.

하느님의 법을, 신앙의 법을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 중에는 세례를 받지 않은 사람도 있습니다. 그들 중에는 아직 하느님을 모르는 사람도 있습니다. 세상의 법을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들 중에는 신앙인들도 있습니다. 세례를 받고 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신앙인이라는 이름을 갖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느님의 법을 따라서 사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아름다운 재단을 만들었던 박원순 변호사는 신앙인은 아니었지만 하느님의 법을 알고 실천하는 사람입니다. 얻어먹을 힘만 있어도 하느님의 은총이라고 이야기한 꽃동네의 오웅진 신부님도 하느님의 법을 온몸으로 살았습니다. 우리의 가슴을 울렸던 이태석 신부님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신문과 방송에서 어떻게 하면 세상의 법을 따라서 살아야 하는지를 접하게 됩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 행복인 것처럼 배우게 됩니다. 그러나 드러나지 않아도 신앙의 법을 따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세상은 어쩌면 그런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신앙의 법을 말씀해 주십니다.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하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 오히려 누가 네 오른뺨을 치거든 다른 뺨마저 돌려 대어라. 또 너를 재판에 걸어 네 속옷을 가지려는 자에게는 겉옷까지 내주어라. 누가 너에게 천 걸음을 가자고 강요하거든, 그와 함께 이천 걸음을 가주어라. 달라는 자에게 주고 꾸려는 자를 물리치지 마라.” 물론 힘든 길입니다. 그러나 가야할 길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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