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현충일’입니다. 조국을 위해서 순국하신 분, 조국을 위해서 희생하신 분들을 특별히 기억하는 날입니다. 지금 우리는 세계 10위의 경제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국민 소득 20,000불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문화, 사회, 정치적으로 안정된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풍요로움과 우리의 행복은 그저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부모님들이 땀 흘려 노력한 결실입니다.
저의 부모님은 일본의 식민 지배를 받았습니다. 6.25 한국 전쟁을 겪었습니다. 모든 것이 폐허가 된 조국에서 지독한 가난을 살았습니다. 중동의 뜨거운 모래바람을 맞으며 외화를 벌었고, 월남에서 목숨을 걸고 전쟁을 해야 했습니다. 우리의 형님과 누나들은 밤을 새워 공장에서 일을 했고 먹지 못하고, 놀지 못하고 저축을 했습니다.
우리의 신앙도 그렇습니다. 1784년 처음 교회가 시작된 이후에 100여 년간 혹독한 박해를 겪었습니다. 10,000여명이 순교를 하였고, 신앙 때문에 가족과 헤어지고, 정든 고향을 떠나야 했습니다. 신자들은 박해를 피해서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숯을 팔고, 도기를 팔아서 생활했습니다. 하느님을 믿으며 살았지만 제대로 교육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 한국교회는 지금 비약적인 발전을 하였습니다. 500만 명이 넘는 신자가 있으며, 많은 사제들이 함께 하고 있습니다. 신앙을 갖지 않은 사람들도 천주교회에 대해서는 호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선조들이 피 흘려 신앙을 지켰고, 우리 부모님들이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충실하게 하였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내 안에서 평화를 얻게 하려는 것이다. 너희는 세상에서 고난을 겪을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 우리가 주님을 믿고 충실하게 살아가면 비록 고난이 있을지라도 그 고난이 기쁨으로 바뀔 것이라고 하십니다. 세상에서 고난을 겪을지라도 주님께서는 우리를 잊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개구리가 올챙이 때를 기억 못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풍요와 행복이 우리의 힘으로 이루어진 것처럼 착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부모님들처럼 열심히 살지 않는다면, 근검절약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풍요와 행복은 모래위에 지은 집처럼 곧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서로 돕지 않는다면 물질적인 풍요는 있을지 몰라도 우리의 정신은 점점 메말라 갈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지금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곳에서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성당에 다닌 다는 것은 박해 받는 일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호감을 얻은 일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선조들이 이런 모습을 보았다면 너무나 행복해서 눈물을 흘릴 것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 좋은 때에 우리에게 주어진 신앙을 제대로 지켜내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세상의 것들에 빠져서 주일 미사 참례를 지키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교회는 점점 커지고 화려해 지는데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은 교회의 문턱이 높아진다고 하소연합니다. 이웃을 돕고, 소외된 이들에게 기쁨을 주어야 하는데 우리들만의 잔치를 벌이기도 합니다. 이것은 참된 신앙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가 들었던 요한복음 16장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는 ‘고별사’입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세상을 떠나야 할 때가 되었음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외롭고 절망에 빠지게 될 제자들에게 ‘성령’을 약속해 주십니다. 우리 모두는 언젠가 죽음을 맞이할 것입니다. 오늘 나에게 주어진 삶을 감사드리고, 성령의 이끄심에 맡길 수 있다면 죽음은 죽음이 아니요, 새로운 삶에로 넘어가는 여정일 뿐입니다.
오늘 주어진 하루를 생각합니다. 만일 오늘이 내 생의 마지막이라면 나는 어떻게 하루를 보낼까! “주님, 성령의 힘을 저희에게 주시어, 주님의 뜻을 마음 깊이 간직하고 거룩한 삶으로 실천하게 하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