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지난 화요일에 고향마을 피정의 집에서 오신 김경희 루시아 수녀님께서 하루 피정을 해 주셨습니다. 수녀님께서는 우리가 기도를 열심히 하면 잊고 있었던 상처들, 그러나 나의 삶에 많은 아픔을 주는 상처들, 하느님께 가지 못하게 가로막는 상처들을 치유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태중에 있을 때 받았던 상처, 자라면서 받았던 상처, 부모, 형제, 이웃에게 받았던 상처들이 있습니다. 그런 상처는 ‘희망기도’를 통해서 치유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희망기도는 청원기도와는 달리, 나의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무엇을 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무엇이 되면 좋겠습니다.’라는 희망을 기도하는 것입니다.
저도 일을 할 때 부담을 느끼는 경우가 있습니다. 가장 큰 부담을 갖는 것은 ‘강의’를 하는 것입니다. 마음이 모질지 못해서 강의 부탁을 하면 잘 하지도 못하면서 거절을 못합니다. 그리고 강의를 하는 날까지 마음에 큰 짐을 지고 사는 것처럼 부담을 갖게 됩니다. 강의를 하는 중에는 그것을 떨쳐버리는데 강의를 하기도 전에 부담을 갖게 됩니다. 수녀님의 피정 강의를 들으면서 앞으로는 강의를 하기 전에도 부담을 갖지 않도록 기도하였습니다.
강론을 준비하는 것도 늘 부담이 됩니다. 매일 강론을 준비하는 것, 주일 강론을 준비하는 것이 기도이며, 제가 사제로 살아가는데 참으로 유익한 일인데 그것을 준비하는 것 역시 부담이 됩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나의 삶을 돌아보며, 교우들에게 도움이 될 말씀을 전하는 것이 강론입니다. 세상의 일들에서 드러나는 하느님의 표징을 읽고 숨겨진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찾아내는 것 그리고 하느님의 뜻을 말씀으로 전하는 것이 강론입니다. 강론을 하는 10분은 금세 지나가지만 준비하는 1시간은 늘 ‘생손앓이’를 하곤 합니다. 앞으로는 강론 준비도 부담이 되지 않도록, 하느님을 찬미하는 기쁨의 시간이 될 수 있도록 기도하였습니다.
운동을 할 때도 그렇습니다. 연습을 열심히 했지만 게임을 할 때는 심장이 뛰고, 잘 하지 못할 것 같은 부담이 있습니다. 평소 연습한대로 차분하게 하면 되는데 그렇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평소보다 잘 못할 때가 많습니다. 다른 사람을 의식하고, 저보다 잘 하는 사람을 보면 주눅이 들고, 잘 못한다고 사람들이 비웃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운동경기는 큰 부담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저의 실력이 그다지 좋지 않다는 것도 알고 있고, 사제가 잘하는 것보다는 기쁘게 참여하는 것을 더 좋아할 수도 있습니다. 앞으로는 운동경기를 할 때에도 부담을 갖지 않도록 즐거운 마음으로 참여하도록 기도했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중요한 일, 소중한 일들을 하게 됩니다. 중요하고 소중한 일들이 기쁘고 즐거우면 좋겠지만 그런 일들이 커다란 짐으로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런 일들이 마음에 큰 부담이 될 때가 있습니다. 학생들은 열심히 공부하는 것이 중요하고 소중한 일입니다. 그런 공부가 부담이 된다면 재미가 없을 것이고, 공부를 잘하기 어렵습니다. 직장인들은 회사에 열심히 다니고, 창의적인 것들을 만들어 내야합니다. 그런 일들이 부담이 된다면 직장 생활이 재미없을 것입니다. 아내들은 가정을 돌보고, 밥을 하고 설거지를 하고, 시장을 봅니다. 자녀를 키우는 일, 남편을 위해서 맛있는 식사를 준비하는 일, 가족들을 위해서 청소를 하는 일이 부담이 된다면, 그것이 해야 할 의무가 된다면 이 또한 재미가 없을 것입니다.
오늘은 성령강림 대축일입니다.
제자들은 부활하신 주님을 전하는 것이 큰 부담이었을 것입니다. 말이 다른 이방인들에게 예수님을 전하는 것,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던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을 전하는 것은 정말 큰 부담이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전하다가 예수님처럼 십자가를 질 수도 있고, 예수님처럼 죽임을 당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가족들을 떠나야 하고, 앞으로 무엇을 먹고, 무엇을 마실지 걱정이 되는 일이었습니다. 그런 제자들에게 성령께서 함께 하였습니다. 성령께서는 제자들의 그런 모든 부담을 기쁨으로, 희망으로 변화시켜 주셨습니다.
수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합니다.’ 그러나 십자가는 나의 부담, 나의 의무, 나의 책임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오직 주님만을 믿는다는 고백이라고 하였습니다. 주님께서 가장 사랑하시고, 가장 기뻐하셨던 일들은 사람들의 믿음이었습니다. ‘너의 믿음이 너를 살렸다. 나는 유대인들에게서는 이런 믿음을 보지 못하였다.’ 주님은 우리의 능력, 재능, 업적을 보지 않습니다. 주님께 대한 믿음을 가진다면 다른 모든 일들은 주님께서 함께 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들 각자는 살아가면서 부담스러운 일들이 있을 것입니다. 제가 강의, 강론 준비가 부담스러웠듯이, 어떤 분들은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 어떤 분들은 기도하는 것이, 어떤 분들은 가족을 돌보는 것이, 어떤 분들은 누군가를 도와주는 일들이 부담스러웠을 것입니다. 또 우리는 각자 끊어 버리고 싶은 악한 습성들이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게으름이, 어떤 분들은 노름이, 어떤 분들은 알코올 중독이, 어떤 분들은 미움과 분노가 있을 것입니다.
오늘 성령강림 대축일을 지내면서 성령의 은사를 청했으면 좋겠습니다.
슬기, 통달, 굳셈(용기), 지식, 의견, 효경, 두려움(경외)의 은사를 청하면 좋겠습니다. 오늘 봉헌 시간에 우리들의 부담과 악한 습성들을 하느님께 드리고, 성령의 은사를 하나씩 뽑아 가시기 바랍니다.
지난 화요일에 고향마을 피정의 집에서 오신 김경희 루시아 수녀님께서 하루 피정을 해 주셨습니다. 수녀님께서는 우리가 기도를 열심히 하면 잊고 있었던 상처들, 그러나 나의 삶에 많은 아픔을 주는 상처들, 하느님께 가지 못하게 가로막는 상처들을 치유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태중에 있을 때 받았던 상처, 자라면서 받았던 상처, 부모, 형제, 이웃에게 받았던 상처들이 있습니다. 그런 상처는 ‘희망기도’를 통해서 치유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희망기도는 청원기도와는 달리, 나의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무엇을 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무엇이 되면 좋겠습니다.’라는 희망을 기도하는 것입니다.
저도 일을 할 때 부담을 느끼는 경우가 있습니다. 가장 큰 부담을 갖는 것은 ‘강의’를 하는 것입니다. 마음이 모질지 못해서 강의 부탁을 하면 잘 하지도 못하면서 거절을 못합니다. 그리고 강의를 하는 날까지 마음에 큰 짐을 지고 사는 것처럼 부담을 갖게 됩니다. 강의를 하는 중에는 그것을 떨쳐버리는데 강의를 하기도 전에 부담을 갖게 됩니다. 수녀님의 피정 강의를 들으면서 앞으로는 강의를 하기 전에도 부담을 갖지 않도록 기도하였습니다.
강론을 준비하는 것도 늘 부담이 됩니다. 매일 강론을 준비하는 것, 주일 강론을 준비하는 것이 기도이며, 제가 사제로 살아가는데 참으로 유익한 일인데 그것을 준비하는 것 역시 부담이 됩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나의 삶을 돌아보며, 교우들에게 도움이 될 말씀을 전하는 것이 강론입니다. 세상의 일들에서 드러나는 하느님의 표징을 읽고 숨겨진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찾아내는 것 그리고 하느님의 뜻을 말씀으로 전하는 것이 강론입니다. 강론을 하는 10분은 금세 지나가지만 준비하는 1시간은 늘 ‘생손앓이’를 하곤 합니다. 앞으로는 강론 준비도 부담이 되지 않도록, 하느님을 찬미하는 기쁨의 시간이 될 수 있도록 기도하였습니다.
운동을 할 때도 그렇습니다. 연습을 열심히 했지만 게임을 할 때는 심장이 뛰고, 잘 하지 못할 것 같은 부담이 있습니다. 평소 연습한대로 차분하게 하면 되는데 그렇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평소보다 잘 못할 때가 많습니다. 다른 사람을 의식하고, 저보다 잘 하는 사람을 보면 주눅이 들고, 잘 못한다고 사람들이 비웃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운동경기는 큰 부담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저의 실력이 그다지 좋지 않다는 것도 알고 있고, 사제가 잘하는 것보다는 기쁘게 참여하는 것을 더 좋아할 수도 있습니다. 앞으로는 운동경기를 할 때에도 부담을 갖지 않도록 즐거운 마음으로 참여하도록 기도했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중요한 일, 소중한 일들을 하게 됩니다. 중요하고 소중한 일들이 기쁘고 즐거우면 좋겠지만 그런 일들이 커다란 짐으로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런 일들이 마음에 큰 부담이 될 때가 있습니다. 학생들은 열심히 공부하는 것이 중요하고 소중한 일입니다. 그런 공부가 부담이 된다면 재미가 없을 것이고, 공부를 잘하기 어렵습니다. 직장인들은 회사에 열심히 다니고, 창의적인 것들을 만들어 내야합니다. 그런 일들이 부담이 된다면 직장 생활이 재미없을 것입니다. 아내들은 가정을 돌보고, 밥을 하고 설거지를 하고, 시장을 봅니다. 자녀를 키우는 일, 남편을 위해서 맛있는 식사를 준비하는 일, 가족들을 위해서 청소를 하는 일이 부담이 된다면, 그것이 해야 할 의무가 된다면 이 또한 재미가 없을 것입니다.
오늘은 성령강림 대축일입니다.
제자들은 부활하신 주님을 전하는 것이 큰 부담이었을 것입니다. 말이 다른 이방인들에게 예수님을 전하는 것,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던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을 전하는 것은 정말 큰 부담이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전하다가 예수님처럼 십자가를 질 수도 있고, 예수님처럼 죽임을 당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가족들을 떠나야 하고, 앞으로 무엇을 먹고, 무엇을 마실지 걱정이 되는 일이었습니다. 그런 제자들에게 성령께서 함께 하였습니다. 성령께서는 제자들의 그런 모든 부담을 기쁨으로, 희망으로 변화시켜 주셨습니다.
수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합니다.’ 그러나 십자가는 나의 부담, 나의 의무, 나의 책임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오직 주님만을 믿는다는 고백이라고 하였습니다. 주님께서 가장 사랑하시고, 가장 기뻐하셨던 일들은 사람들의 믿음이었습니다. ‘너의 믿음이 너를 살렸다. 나는 유대인들에게서는 이런 믿음을 보지 못하였다.’ 주님은 우리의 능력, 재능, 업적을 보지 않습니다. 주님께 대한 믿음을 가진다면 다른 모든 일들은 주님께서 함께 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들 각자는 살아가면서 부담스러운 일들이 있을 것입니다. 제가 강의, 강론 준비가 부담스러웠듯이, 어떤 분들은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 어떤 분들은 기도하는 것이, 어떤 분들은 가족을 돌보는 것이, 어떤 분들은 누군가를 도와주는 일들이 부담스러웠을 것입니다. 또 우리는 각자 끊어 버리고 싶은 악한 습성들이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게으름이, 어떤 분들은 노름이, 어떤 분들은 알코올 중독이, 어떤 분들은 미움과 분노가 있을 것입니다.
오늘 성령강림 대축일을 지내면서 성령의 은사를 청했으면 좋겠습니다.
슬기, 통달, 굳셈(용기), 지식, 의견, 효경, 두려움(경외)의 은사를 청하면 좋겠습니다. 오늘 봉헌 시간에 우리들의 부담과 악한 습성들을 하느님께 드리고, 성령의 은사를 하나씩 뽑아 가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