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바르나바 사도 축일입니다. 바르나바 사도는 바오로 사도와 함께 초대교회의 주춧돌이 되었습니다. 특히 이방인을 위한 선교를 많이 하였습니다. 이분들의 땀과 노력이 결실을 맺어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이 생겨났고, 유대인의 회당이 아닌 교회가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오늘 신도림동 성당에서 하루피정을 합니다. 피정의 주제는 ‘교회와 영성생활’입니다. 오늘 강론은 제가 하는 강의를 간략하게 요약하도록 하겠습니다.
교회란 무엇일까요?
저는 교회는 고속도로의 휴게소와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먼 길 운전을 하다, 고속도의 휴게소에서 잠시 쉬기도 합니다. 간식을 먹기도 하고, 차에 기름을 넣기도 합니다. 요즘 우리나라의 고속도로 휴게소는 시설이 무척 좋아졌습니다. 우선 깨끗하고, 음식도 맛이 있고, 다양한 편의시설을 갖추었습니다. 아무리 고속도로의 휴게소가 좋아도 그곳에서 자는 사람은 없습니다. 다시금 목적지를 향해서 떠나게 됩니다. 인생이라는 고속도로에 많은 휴게소들이 있습니다. 사찰, 회당, 사원, 교회들이 있습니다. 각 종교는 저마다 삶의 진리를 이야기하고, 인생의 가치를 이야기하고, 영원한 삶을 이야기 합니다. 가톨릭교회는 2000년 역사를 지니고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전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성사’를 통해서 신자들에게 많은 편의를 제공해 주고 있습니다.
누가 교회에 다닐까요?
고속도로의 휴게소에는 누구나 머물 수 있습니다. 교회도 누구나 다닐 수 있습니다. 아프고, 가난한 사람도, 외롭고 지친 사람도 교회에 올 수 있습니다. 인생을 잘못 살았고, 많은 죄를 지은 사람은 교회에 와서 죄를 용서받을 수 있고,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양심대로 살았고, 인생을 올바르게 살았던 사람도 교회에 올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사는 것이 영원한 생명을 얻는 길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게 됩니다. 교회는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있기 때문에 늘 순결하고, 깨끗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교회가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빛이 교회를 비추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교회에 다닐 수 있을까요?
고속도로를 이용하는 사람은 톨게이트에서 티켓을 뽑아야 합니다. 휴게소를 이용하면서 비용을 지불합니다. 교회에 다니기 위해서는 먼저 교리를 배워야 합니다. 인간은 누구인지, 종교란 무엇인지, 하느님은 어떤 분인지,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인지, 성사는 무엇인지, 성서는 어떻게 쓰여졌는지, 교회의 법과 제도는 무엇인지, 기도와 신앙생활은 어떻게 하는지와 같은 것들을 배웁니다. 교리를 다 마치면 세례를 받고 세례를 통해서 지난날의 모든 죄는 사해지고, 하느님의 자녀가 됩니다.
누가 교회를 세웠을까요?
길이 먼저 있었고, 그 길 위에 휴게소가 생기듯이 교회는 길이요 진리이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있었고, 그분께서 제자들을 선택하여서 교회를 세웠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기억했고, 그 가르침을 성사로 구체화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물과 성령으로 세례를 주셨듯이 제자들은 세례를 주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병자들을 치유해 주었듯이 제자들은 아픈 사람들을 위해서 기름을 바르고 기도해 주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배고픈 사람들을 측은하게 생각하시고 5000명을 먹이셨듯이 제자들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빵을 나누었고, 마지막 날에 빵과 포도주를 축복하셔서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신 것을 기억하며 제자들은 함께 모여 빵과 포도주를 축복하여 마지막 만찬을 재현하였습니다. 주님께서 가정을 축복하였듯이 제자들은 혼인을 축복하였고,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성령을 보내주셨듯이 제자들은 성령의 은사를 함께 나누었습니다. 예수님께서 12명의 제자들을 선택하셨듯이 제자들은 교회를 위해서 봉사할 사람들을 선발하였습니다. 이런 것이 구체적으로 드러난 것이 바로 ‘성사’입니다.
신앙인들은 교회를 통해서 삶의 위로를 받고, 새로운 길을 향해서 나가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신앙생활, 영성생활입니다. 영성생활은 왜 필요합니까? 세상의 것들에 우리들의 마음을 빼앗기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증오, 분노, 시기, 질투가 내 안에서 생겨납니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만들어 주신 아름다운 세상에서 기쁘고 행복하지 못 하기 때문에 ‘영성생활’이 필요합니다.
영성생활의 목표는 무엇입니까? 하느님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당신이 누구신지를 예수님을 통해서 알려 주셨습니다. 따라서 영성생활의 목표는 예수님을 아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예수님과 함께 생활했고, 예수님을 체험했던 사람들이 기록한 ‘성서’를 통해서입니다. 우리가 성서를 읽고, 예수님의 삶을 따라가는 것, 그것이 영성생활의 목표입니다.
영성생활의 원천은 누구입니까? 세상을 창조하시고, 조건 없는 사랑으로 우리를 이끌어 주시는 하느님이십니다. 우리는 창조의 이야기를 통해서 하느님께서 세상을,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알 수 있습니다. 무한하신 하느님의 사랑이 영성생활의 원천입니다.
영성생활의 힘은 무엇입니까? 다락방에 숨어있던 제자들에게 용기를 불어 넣어 주신 분, 바로 성령이십니다. 우리가 성서를 읽고 자신을 돌아보면 우리 안에 있던 악한 것들은 드러나게 됩니다. 성령께서 우리를 이끌어 주시면 우리는 새로운 기쁨을 느낄 수 있게 됩니다. 바로 성령께서 영성생활의 힘입니다.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친교와 사랑을 느끼는 것이 바로 영성생활입니다.
영성생활을 하는데 장애가 되는 것은 무엇일까요?
첫째는 나 자신이 중심이 되려는 교만함입니다.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었다는 것은 하느님의 말씀보다는 자신의 판단을 더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입니다. 성서에 나오는 많은 죄악들은 하느님의 말씀보다 자신의 욕심을 먼저 생각한 교만에서 시작됩니다.
둘째는 하느님의 사랑을 받고 있지 못하다는 열등감입니다. 지난날의 잘못과 죄 때문에 하느님의 사랑을 받지 못할 것이라는 열등감은 우리를 영성생활에서 멀어지게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죄가 진흥같이 붉어도, 우리의 죄가 다홍같이 붉어도 눈과 같이 희게, 양털같이 희게 해 주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악의 힘을 이겨낼 수 있을까요?
우리의 힘으로는 악의 힘을 이겨낼 수 없습니다. 소는 고삐를 잡고 움직이는 대로 방향을 바꾸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악과 대항해서 맞서면 우리는 악의 고삐를 잡고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계속 악한 것들에 우리의 마음을 빼앗기게 됩니다. 소의 고삐를 놓아야만 자유로울 수 있듯이, 우리도 악한 것들을 놓아야만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쓰레기 더미에서 있으면서 깨끗해지기는 어렵습니다. 우리가 쓰레기 더미에서 나와야만 비로소 깨끗해집니다.
우리가 하느님께 좀 더 가까이 가기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의식성찰’이 필요합니다. ‘양심성찰’은 나의 죄와 잘못을 돌아보는 것이라면, 의식성찰은 하느님의 이끄심에 나를 맡겨드리는 것입니다. 하루 종일 식사만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몸은 비만해 질 것입니다. 하루 종일 기도만 할 수 있는 사람도 없고, 그렇게 할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는 성서말씀을 읽고, 기도를 통해서 느낀 것들을 적어야 합니다. 떠오르는 모든 것들을 적어보면 우리는 정화되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잘못과 죄가 떠오를 수도 있고, 새로운 희망과 기쁨이 떠오를 수도 있습니다. 그 모든 것들을 적으면서 정리하는 것이 의식성찰입니다. 식사를 할 때, 우리는 그냥 삼키지 않습니다. 꼭꼭 씹어서 먹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소화도 잘되고, 건강해 지기 때문입니다. 기도를 할 때도 우리는 ‘의식성찰’을 하면서 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기도가 온전히 우리의 영혼을 정화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