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 제 4주일

2010. 12. 19. 오전 4:51:10

글자

 

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단 앞에 있는 대림초 4개가 모두 밝혀졌습니다. 이른 새벽 멀리서 동이 터오면 곧 붉은 태양이 떠오르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제 4개의 불이 모두 켜졌습니다. 곧 주님의 성탄이 다가옵니다. 우리는 무엇을 하면서, 주님의 성탄을 기다려야 할까요? 우리는 무엇을 우리에게 오시는 주님께 선물로 봉헌해야 할까요? 며칠남지 않았습니다. 차분한 마음으로, 우리의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성탄을 맞이하면 좋겠습니다.

어떤 마을에서 있었던 이야기라고 합니다. 그 마을에 사는 친구 두 명이 하늘에 떠 있는 것을 보고 다툼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한 친구는 하늘에 있는 것이 달이라고 했습니다. 다른 한 친구는 하늘에 있는 것이 해라고 했습니다. 둘은 서로 다툼을 하다가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어보기로 했습니다. 저 하늘에 있는 것이 ‘달입니까? 해입니까?’ 그러자 지나가는 사람은 이렇게 말을 하였다고 합니다. ‘저는 이 동네 살지 않아서 잘 모르겠는데요.’

천주교 정의구현 사제단과 몇몇 원로 사제들이 정진석 추기경님의 신문 인터뷰에 대해서 반론을 제시하였습니다. 같은 사안에 대해서 서로의 생각과 의견이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이런 일들이 가톨릭교회 내에 분열이 있는 것처럼 보여서는 안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특히 말은 한번 밖으로 나오면 다시 담을 수가 없기 때문에 그 말을 할 때는 좀 더 신중하고 사려 깊게 하여야 할 것입니다.

정부에서 추진하는 4대강 사업은 절차상 합법하게 진행되고 있는지 살펴보는 것은 필요합니다. 여당이 단독으로 처리한 새해 예산안이 모두 합당하게 결정된 것인지도 알아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4대강은 우리가 살아야하고, 우리의 후손들이 살아야 하는 우리 동네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정부에서 집행해야 하는 새해 예산은 우리들의 세금으로 집행되는 우리 동네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교회 안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있습니다. 우리 본당에도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함께 있습니다. 어느 한 방향으로 모든 사람을 이끌어가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습니다. 특히 다양한 의견으로 첨예하게 대립되고 있는 사안들은 더 그렇습니다. 서로의 생각이 다르고, 의견이 다른 것을 하나로 묶어주는 것은 선거라는 제도입니다. 모두가 똑같은 생각을 가질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선거라는 제도를 통하여 다수가 원하는 방향으로 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함께 합의한 민주주의의 꽃 선거라는 제도입니다.

자동차는 운전하는 사람에 따라서 우리를 빠른 시간에 원하는 목적지까지 갈 수 있도록 해 주는 운송수단이 되기도 하고, 5분 빨리 가려다고 50년 먼저 갈 수 있도록 하는 사고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자동차는 그 자동차를 운전하는 사람에 따라서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사고는 교통법규를 위반하기 때문에 발생합니다. 나쁜 운전습관 때문에 일어납니다. 그래서 편리하고 즐거운 운전이 되기 위해서는 좋은 운전습관이 중요합니다.

좋은 운전습관 중에는 준법운전이 있습니다. 이렇게 준법 운전만 하여도 대부분의 교통사고는 예방할 수 있습니다. 신호등을 잘 지키고, 규정 속도를 지키기만 해도 잘하는 운전입니다. 두 번째로 좋은 운전습관은 안전운전입니다. 비가 오는 날은 속도를 더 줄이는 것입니다. 운전을 하기 전에는 미리 충분히 휴식을 취하는 것입니다. 2시간 정도 운전을 하면 잠시 쉬는 것입니다. 앞에 큰 차가 있으면 거리를 충분히 두는 것입니다. 앞에 있는 차량의 흐름, 뒤에 따라오는 차량을 살펴보면서 운전을 하는 것입니다. 가장 바람직한 운전습관은 양보운전입니다. 운전을 하다가 고장 난 차가 있으면 내려서 도와주는 운전입니다. 조금 돌아가더라도 짐을 들고 힘들게 걸어가는 노인을 태워주는 운전입니다. 우리 모두가 양보운전을 한다면 우리 사회는 한층 밝고 아름다워 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우리 신앙인들은 겸손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 겸손에도 3가지 차원이 있습니다. 첫 번째 겸손은 십계명을 충실하게 지키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가르침을 충실하게 따르는 것입니다. 주일미사에 꼭 참여하고, 교무금도 정성껏 준비하고, 성당의 일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 겸손은 십계명은 물론 작은 신앙의 의무까지도 충실하게 지키는 것입니다. 주일미사는 물론 평일미사도 자주 참례하고, 본당에 있는 여러 신심단체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입니다. 겸손의 가장 큰 단계는 이제 십계명과 신앙의 의무는 물론이고 주님을 위해서라면 희생과 고통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주님처럼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을 큰 영광으로 아는 것입니다. 어려운 이웃들을 찾아가고, 그분들을 위해서 봉사하는 것입니다. 내가 가진 것을 기쁜 마음으로 이웃과 나누는 것입니다. 때로 모함을 당하고, 때로 비난을 받아도 화를 내지 않고, 그런 상처 때문에 봉사하는 자리를 떠나지도 않습니다.

오늘 우리는 요셉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다고 말을 합니다. 요셉은 겸손의 두 번째 단계까지 지키면서 살았습니다. 운전으로 말을 한다면 안전운전까지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천사 가브리엘은 요셉에게 또 다른 차원의 겸손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느님을 위해서라면 나에게 주어지는 고난과 고통까지도 감수하는 겸손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위해서라면 함께 자리를 하지 않았음에도 아이를 가진 마리아를 아내로 맞이하는 겸손입니다.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깨어서 기다리는 사람은 이웃과 형제를 소중하게 생각하게 되며, 이런 이들은 형제의 고통과 절망, 괴로움과 슬픔을 함께 나누며 그런 자신의 행동이 하느님의 자녀로서 당연히 해야 될 일임을 깨닫게 되며, 이런 사람들에게 “임마누엘”주님은 언제나 함께 하십니다. 그런 사람들은 임마누엘 주님을 굳이 찾으러 멀리 가지도 않고, 그분이 오지 않는다고 불평하지도 않으며, 매년 다가오는 “성탄”을 의미 있는 시간으로 감사하는 시간으로 찬양하는 시간으로 맞이하게 됩니다. 동방박사들이 황금, 유향 그리고 몰약을 준비했듯이 우리들도 기도와 희생 나눔을 준비해서 주님의 성탄을 맞이했으면 좋겠습니다.


 

 

 

댓글 1

  • 2010년 12월 19일 오후 3:51

    아멘!

매일복음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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