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며칠 전에 사진 정리를 하였습니다. 본당의 날 기차를 타고 떠난 성지순례, 선교 산악회에서 준비한 청량산 산행, 세례식의 사진들입니다. 사진을 보면 지금은 잊어버린 일들이 생각납니다. 우리는 사진을 보면서 지난 일들을 생각하지만,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일들을 다 알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진실과 화해 위원회의 위원장이 미국에서 학술 발표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분의 발언이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광주에서 있었던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광주에서 있었던 폭동이라고 표현했고, 제주에서 있었던 4.3 사건은 공산주의자들이 주도한 반란과 폭동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암울하고 슬픈 역사의 현장에서 억울하게 죽어간 사람들에 대한 모독이고, 남아 있는 유족들의 아픈 가슴에 못을 박는 일입니다. 같은 사건을 놓고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지는 것을 봅니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부활이 없다고 믿는 사람들이 예수님께 부활이후의 삶에 대해서 질문하는 내용을 들었습니다. 마치 땅 위를 기어 다니던 애벌레와 하늘을 날아다니는 나비가 같은 것이냐고 묻는 것과 비슷합니다. 물론 생명의 연속성에서는 같은 면이 있지만, 그 기능과 삶의 방식은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부활이후의 삶에 대해서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들의 삶의 방식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아 갈 것이라고 이야기 하십니다. 지금 우리들의 상식과 기준으로 부활이후의 삶을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이야기 하십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들의 삶이 또한 부활이후의 삶에도 연속성이 있기 때문에 충실하게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성서에서 말하는 ‘부활’이란 말의 뜻은 단순히 죽었던 사람이 다시 살아나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일어서다. 다시 선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낡은 관습과 습관을 버리고 하느님의 자녀로 새로 태어나는 것이 부활입니다. 잘못된 생각을 버리고, 죄의 상태에서 벗어나 잘못된 틀을 벗어버리고 사랑과 희망의 날개를 얻는 것이 바로 부활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갈릴래아로 가라!’ 갈릴래아는 예수님께서 복음을 전하던 곳입니다. 절망 중에 있던 사람들에게, 두려움에 떨고 있던 사람들에게 죽음은 죽음이 아니요, 십자가의 끝은 절망이 아니라는 것을 알리는 것이 바로 부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또 ‘예루살렘으로 가라!’고 하십니다. 이는 예수님을 박해하고 십자가에 못 박았던 사람들에 대한 용서입니다. 분노와 원망을 던져버리고, 화해와 용서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바로 부활입니다. 몸의 변화가 부활이기도 하지만, 인식과 태도의 변화가 부활의 시작입니다.
부활은 우리들의 삶이 천사와 같아지는 것입니다. 순수한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바로 천사와 같은 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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