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요즘, 성당에서 키우는 닭이 알을 품고 있습니다. 더운 여름에 알을 품고 있는 어미 닭을 보니, 애처롭기도 합니다. 자신이 낳은 새끼를 사랑하는 것은 짐승들도 같은 마음이라 생각합니다. 주변을 보면 애완동물을 키우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애완동물을 키우는 것은 정서적으로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노년에 혼자사시는 분들은 애완동물을 키우면서 외로움을 덜기도 하고, 우울증이 치유되기도 한다고 합니다. 어떤 분들은 10년 이상씩 애완동물을 키우시곤 합니다. 애완동물이 아프거나, 잘못된 다고해서 버리는 분들도 못 보았습니다. 말을 하지 못하고, 돈을 버는 것도 아니고, 때로 말썽을 피우지만 사랑으로 함께 지내는 것을 봅니다.
혼배성사 주례를 설 때가 있습니다. 올해에는 다른 해와 달리 혼인성사가 많았습니다. 저는 혼인을 커피와 비유할 때가 있습니다. 뜨거운 물에 섞인 ‘커피, 프림, 설탕’은 하나가 됩니다. 그리고 하나가 된 셋을 갈라놓는 일은 불가능합니다. 커피에 석인 물과 설탕, 프림과 커피를 나눌 수 없듯이 혼인은 사람의 힘으로 갈라놓을 수 없다고 말을 합니다. 이렇게 강조하는 이유는 혼인의 소중함과 가치를 망각하고 이혼을 하는 부부들이 많아지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혼에 이르는 사유도 무척 많습니다. ‘배우자의 불륜, 알코올 중독, 도벽, 사업실패, 잦은 폭력, 자녀에 대한 무관심, 양가부모님과의 불화, 성격 차이’ 등과 같이 이혼의 이유도 증가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참고 살아야 한다고 말을 했습니다. 물론 여성들에게 많이 강요된 면이 있습니다. 그래서 시집을 가면 ‘벙어리 삼년, 귀머거리 삼년, 장님 삼년’처럼 살아야 한다고 하기도 했습니다.
오늘 에제키엘 예언자는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의 관계를 사랑하는 배우자와의 관계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였을 때부터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사랑하셨고, 먹여주고 재워주었으며, 많은 것을 거저 주었다고 말을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느님의 사랑을 듬뿍 받았으면서도 성공하자 하느님을 버리고, 다른 곳을 향해 바람을 피웠다고 말을 합니다. 마치 모든 것을 바쳐 성공시켜 놓았던 남편이 외도를 하는 것과 같다고 말을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럼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뉘우치고, 회개하여 돌아올 것을 기다라고 있다고 말을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혼’에 대해서 말씀을 하십니다. 혼인은 하느님께서 맺어주시는 것이니, 사람이 마음대로 이혼을 해서는 안 된다고 하십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말씀을 근거로 이혼에 대해서 엄격한 법을 적용하고 있습니다. 이혼은 성립될 수 없고, 다만 근본적인 문제가 있는 경우에 한해서 ‘혼인의 무효’를 선언하고 있습니다.
가끔 이런 질문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신부님은 왜 결혼을 하지 않습니까?” 제가 대답도 하기 전에 한 자매님께서 이렇게 답변을 하셨습니다. “처자식이 있으면 자신이 맡은 신자들을 열심히 돌보며 사목활동을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없으니까요.”라고 친절하게 대답을 하셨습니다. 어때요 정확한 답변인가요? 수도자나 사제들의 독신을 단순히 효과적인 사목활동을 위한 수단으로 취급하는 것은 효과주의나 경제마인드로 접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되면 사목활동만 잘 한다면 독신은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 가능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독신생활의 참된 이유는 한마디로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 때문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스스로 독신으로 사셨고 우리를 위해 당신을 온전히 내놓으신 주님을 갈림 없는 마음으로 따르기 위한 것입니다. 사제가 독신으로 살기 때문에 사목활동을 효과적으로 수행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은 독신생활에서 따라오는 부수적인 결과이지 목적은 아닐 것입니다. 사제나 수도자들의 독신은 예수 그리스도와의 인격적인 관계에서 그 근거를 두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
어떤 관계가 예수 그리스도와의 인격적인 관계입니까! 예수님은 나를 따르려면 이렇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첫째, 혈연관계보다 예수님을 더 따라야 한다고 합니다. 단순히 독신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뜻과 가르침을 먼저 생각하고 따라야 한다고 이야기하십니다.
둘째,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를 마음의 준비가 되어야 한다고 하십니다. 지배하고 소유하려고 한다면 독신으로 사는 것이 아무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남을 탓하고 원망하는 삶의 자세를 버려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셋째, 자기가 가진 것을 모두 버릴 수 있는 무소유의 자세가 필요하다고 하십니다. 내 주위를 돌아보면 버리지 못하는 것들이 참 많습니다. 1년이 지나도록 한번 입지 않는 옷도 있습니다. 몇 년 째 듣지 않는 음반도 있습니다. 필요하지 않은 것들도 포기하지 못하는데 주님을 위해서 정말 필요한 것을 버릴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여행을 가면 따로 방을 마련해 주시는 교우들의 배려에 대해서 당연하다고 생각한 적이 많습니다. 음식을 먹을 때 다른 분들은 다 줄을 서서 기다리는데 사제라는 이유로 음식을 갖다 줄 때 감사하는 마음보다는 그런가보다 하고 생각한 적이 많습니다. 자가용으로 모시러 오고, 모셔다 드려야 한다고 하는 말씀을 듣고 아니라고 지하철 타고 버스타고 간다고 말한 적은 거의 없습니다. 독신으로 사는 것은 필요에 의한 것일 뿐입니다.
그리스도와 일치하고, 그리스도의 뒤를 따르는 삶을 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혼인을 하여 가정을 이루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의 뜻, 하느님의 사랑을 드러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