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와 포도주는 오래 될수록 좋은 것이라고 한다. 그런 것 같다. 오랜 시간을 같이 보내고 나서 함께 익어가는 나이는 그것을 말해준다. 좋은 세월도 나쁜 세월도 같이 겪어주는 친구는 그런 셈이다.
오늘은 오래된 친구들을 위하여 소찬을 준비한다. 간고등어를 굽고 호박전과 버섯을 볶았으며, 계란찜을 했다. 늘어놓으니 한상 가득하다. 그런대로 마음이 푸짐하다. 그렇게 별난 반찬이 아니지만 그것들을 먹성좋게 먹어주는 오랜 친구들은 고맙다. 좋은 세월에 만난 사람들은 아니었다. 행복한 세월을 함께 보냈던 번듯한 친구들도 아니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 시간에 곁에 남아준다는 것이다. 나이들어 가면서 곁에 남아준다는 것은 재산보다 더 값지고 귀한 보물들이라는 것을 느끼고 또 느낀다.
이들에게 대한 나의 성의는 따뜻한 밥 한끼 손으로 지어 대접하는 일인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사실 음식을 잘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밥상을 앞에 두고 아무런 이해관계 없이 주고받는 수다들이 얼마나 정겨운가? 오십줄에 들어서는 여자들의 그러그러한 살아가는 이야기들이 내 마음에는 소불소불 소중하다.
독신으로 살아가는 이는 만든 밥상이 정겹고 주부로 살아가는 이는 차려준 밥상에 눈물이 난다고 했다. 작은 수고가 남의 즐거움이라면 이 정도의 번거로움은 얼마든지 감수할 작정이다. 그것도 나의 즐거움이다. 나는 음식을 준비하면서 맛을 보면서 기다리면서 또한 행복을 느끼니까..
젊어서는 진지하고 깊은 별난 속의 이야기만이 대화의 주제라고 생각했었다. 그런 이야기를 해야만 고상하고 그런 이야기를 해야만 사람이 무게가 있어보였다. 그러나 나이들어갈 수록 사람은 거기서 거기이며 궁극은 누구나 같은 무게를 짊어지고 가는 엇비슷한 구석이 있다는 것을 알아가기 시작한다. 아니 다르기도 하다. 타인에게는 없는 질병이나 상처들을 안고 살아가는 이도 있다. 그러나 한번 태어나서 한번 죽는다는 사실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그것을 알게되면서 참 편안해졌다. 나의 탄생과 죽음조차 그것이 아주 평범한 일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게 되면서 사람에 대한 두려움은 조금씩 줄어들게 되었다. 그리고 사람은 누구나 밥 세끼를 먹고 살아간다는 일을 알게 되면서 그것을 굶는 것이 없는 것이며 버리는 것이 낭비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아주 단순한 일이었지만 아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사람이 사람구실을 하게되려면 스무해는 살아야 한다. 그리고나서도 얼마나 오랜 시간을 살아내어야 하는가.. 그 동안 친구없이 혼자서 살아가는 것은 정말로 외롭다. 살아가는 일이 소중하고 살아가는 일이 외롭지 않으려면 묵은 친구를 가져야 삶의 자취가 유채색으로 남을 것이다.
오늘 만난 친구들은 그저 펑퍼짐한 삶과 직장이야기로 수다를 풀어놓았다. 시냇물 소리처럼 그것들도 반가웠다. 나이들어가면서 그것들이 얼마나 소중한 이야기인지를 이제는 안다. 젊어서의 그 혈기도 이제는 삭고 허영도 사라져버린 털빠진 닭 같은 자신이 살아가는 이야기에 은근슬쩍 매력을 느낀다. 나도 그렇게 살아가고 싶어진다.
사실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렇게 호흡하면서.. 그러나 조금 더 노력하면서 애써서 남은 삶을 즐겁고 유쾌하게 살아가고 싶어진다. 젊어서의 실패들은 나에게 고름들을 주었다. 선생이라는 직업을 가지다보면 그것들이 약이 된다는 것을 안다. 작은 실패가 큰 약이 되기도 하고 큰 실패가 작은 약이 되기도 한다. 실패의 경험들은 설명력을 만들어준다. 그래서 언어의 카리스마가 생겨나기도 한다.
그러나 생활이라는 것들을 더 소중하게 간직하려고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묵은 친구들을 더 소중하게 반기고 챙기고 싶어진다. 가끔씩 먼저 연락하고 입다문 미소를 전해주는 역할들이 전혀 번거롭지 않다고 생각하는 자신이 이제는 대견스럽다. 맛난 반찬냄새가 정겹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