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원 산책길에서

2009. 9. 4. 오전 9:22:55

글자

비온 후 공원에 산책을 나가면 습한 공원의 진한 풀냄새가 향긋하다. 풀들이 모여서 흙과 어우러져 내는 냄새는 나를 적시면서 이렇게 말해주는 것 같다. “너도 같이 젖어봐. 하나가 된다는 것은 정말로 좋은 일이야..” 풀냄새가 향긋한 공원길과 하나가 되어서 걷다보면 울적하던 기분은 그저 단순하고도 비어있는 마음으로 돌아간다.

걷는 것처럼 단순하고 멍청해보이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스스로 말했었다. 운동을 하러 헬스클럽에 가서 러닝머신을 타면 앞에서는 유선 텔레비전의 수많은 채널이 있고, 플로어에는 음악이 흘러도 지루하고 지루한 멍청한 행위를 하고 있는 것만 같았었다. 그렇지만 공원에 가서 흙길을 걸으면 같은 일을 하고 있지만 나도 살아있는 것만 같아서 좋다.

이런 나의 생각이 편견일까? 그런 일들을 곰곰이 생각해본 적도 있었다. 걷는다는 일은 꼭 같은 일인데 그저 환경의 차이로 그렇게 야박하게 헬스클럽을 비하하는가? 운동이 하기 싫다고 정직하게 말하는 게 낫지 않은가? 공원을 걸으면 조금 더 고상해 보이는가? 그러나 그 답은 곧 알게 되었다. 여기저기 둘러보는 것이 재미있어서 이다. 살아있는 많은 풀들, 꽃들, 나무들.. 우울하던 시간에 나와 친구해서 그 많은 이야기들을 그들과 나누던 시간의 고마움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궂이 좋고 싫은 것은 취향일 뿐인데 나의 감정에게 너무 야박하게 굴지 말자고 너그럽게 넘어가기로 마음 먹었다. 누구나 내 얼굴을 보면 “살 좀 빼지 그래요” 그런 이야기를 한다. 정직한 충고이기도 하고, 다른 것들에서 공격을 하고 싶을 때 가장 약점으로 들고 나오는 것이기도 하다. 텔레비전을 보면 공개적으로 살을 빼는 프로젝트에서 이를 악물고 살을 빼는 사람들도 있다. 나 역시 그렇게 빼본 적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종류의 권유들이 참 싫다. 내가 살찌는데 보태준 것도 없는 사람들이 아름다움은 마르고 짙은 화장 속에 있는 듯이 나와는 다른 가치관을 강요할 때 더 반발심이 들어서 “내가 뭐 어떻다고 그래요” 퉁명스럽게 한 마디 쏘아부친다. 사실 내 마음 깊은 곳에서는 내게 붙어있는 그 많은 살들이 좋은 친구들은 아니다. 스스로 자격지심에서 놓여나기까지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나 아닌 사람들은 남의 상처에 소금 뿌려가면서 정성된 충고라도 되는 듯한 이야기 하고 또 했다.

세상에는 기형이나 불구로 살아가는 사람도 많다. 그런 사람들에게 그것 좀 고치라고 권하는 사람들이 많다. 소아마비로 두 다리를 못쓰는 사람에게 다리병신이라고 수근대고, 시각에 장애가 있는 사람에게는 장님이라고 비하한다. 청각장애자에게는 귀머거리라고 이용해 먹고, 정신지체자는 동네북처럼 학대받는 이야기가 신문에 오르내린다. 그저 자신의 삶을 살아나가기에 버거운 사람에게 자신이 정상인임을 확인하기 위하여 하나의 짐을 더 얹어주고 상처를 주곤 한다.

그러나 내가 나로서 살아간다면 건강에 지장이 없는 한 그런 얄팍한 말에 더 이상 상처받지 않아야 긁어대는 사람들도 재미가 없어진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스스로 떨치고 일어서야 하는 일 중의 하나인 것이다. 살도 그래야 뺄 수 있다는 것을 안다.

누구나 삶을 살다보면 조금씩은 무언가 덜 갖추고 살아간다. 그러나 그것이 드러난 장애일 때 사람들은 그것에게 잔인하고 가혹하다. 그 까닭은 자신과 다르기 때문이다. 조금 기능이나 모양새가 다른 사람들을 몰아세워 상처줌으로써 자신은 정상인에 속해있다는 안도감을 상대적으로 느끼는 것이 그 속마음일 것이다. 평범한 사람에게 늘상 있는 인간의 마음들이다.

사람은 사람에게 소중해야 하는데.. 아프고 힘들던 시간 공원길에 산책을 하다보면 그런 나의 아픔들에게 나무와 풀과 꽃들은 인사한다. 그저 있는 그대로 오늘도 왔니? 그러면 나도 대답한다. 응.. 그러다가 보면 복잡하게 얽혀서 줄줄이 엮여져있던 미움과 분노들이 잊혀져간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는 공원길의 나무와 풀과 꽃과 더불어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그들에게 배우는 것은 나무는 나무이고, 풀은 풀이며, 꽃은 꽃인채로 살아간다는 것이다.

내가 뒷머리에서 연기가 솟아오르도록 화를 못참고 있는 분노와 미움은 그저 내 머릿속의 일이지, 있는 그대로 바라보면 그저 객관적인 사실일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길을 따라서 나란히 걷다보면 궂이 허부지게 끌어안지 않아도 우리는 교감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유선 텔레비와 플로어에 가득찬 음악들이 그런 교감을 해주지는 않으니 공원 산책길에서 걷는 것을 더 좋아하고, 그렇게 걸어서는 살이 빠지지 않는 운동을 즐겨하는 자신의 취향을 존중해준다.

습한 공원의 풀냄새는 비온후 개인 하늘아래 산책길의 선물이다. 내 온 몸과 마음에 배어서 공기 속에서 뒹굴고 싶은 그런 냄새이다.

댓글 3

  • 2009년 9월 4일 오전 10:00

    비온 후 공원을 산책하면 상쾌한게 기분 좋죠. 집 가까이에 공원이 있어서 가끔씩 산책하는데 나이들수록 자연의 아름다움에 눈을 뜨게되고 감사하는 마음이 생기는것 같아요.

  • 2009년 9월 4일 오후 1:11

    셀 수도 없는 차별에 몸서리 치게 되는 사회..술을 권하는 사회..인형같은 여자만 사람 대접받는 사회..다양성이 무시되는 사회..생각하면 무서운 곳이었습니다. 그래도 정이 그리운 그런 내 고향..

  • 2009년 9월 5일 오전 8:32

    말씀하신김에 저도 울동네 가까운 공원에서 초록잎내음을 좀 맡으면 또 다른 빛깔의 희망을 노래할 수 있을까요! ㅎㅎ

│ 이 │이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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