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맛

2009. 9. 4. 오전 9:21:50

글자

아침에 아침밥 먹고

점심에 점심밥 먹고

저녁에 저녁밥 먹고

그렇게 하루는 흘러갑니다.

 

까치소리 까악까악 해는 저물고

빠알간 노을은 언덕에 물드는데

 

내가 죽기 전까지

아침에 아침밥 먹고

점심에 점심밥 먹고

저녁에 저녁밥 먹고

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랜 병환으로 고생하시다가 결국 치매에 까지 이르셔서 마지막 시간을 보내야 했던 아버지 생각이 난다. 그 해 겨울방학 나는 마지막으로 삼시세끼 더운밥을 지어드리겠다고 석 달을 집안에 틀어박혀서 밥을 했다. 우울한 시간이었다. 그 시간에 썼던 짧막한 글이다. 아직 모습은 살아있는데, 생각이 저 멀리 달아나버린 아버지의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는 일은 참 아픈 일이었다.

가끔은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면서 도덕이나 가치가 동물과는 다른 존귀한 존재인양 이야기들을 하는 것을 듣곤 했었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러나 쩌렁쩌렁하던 자존심의 아버지가 허물어지는 모습은 정말로 큰 상처였다.

그렇지만 그 안에서도 깨달음이 생겨나고, 또 삶의 궁퉁이가 생겨났다. 결국 삶이라는 것에 그렇게 많은 것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젊어서는 이것 저것 많은 일에 눈을 돌리지만 결국 삶이라는 것은 밥 먹고 똥 누는 일, 그리고 순한 마음 먹으면서 살아가는 일 그밖에 별다른 것이 없는 것 같았다.

그런 것 같았다. 하얀 쌀밥을 먹으면 그런 똥을 누게 되어있다. 허영에 지친 문화의 밥을 먹으면 그런 똥을 누게 되어있다. 그렇게 사람의 정신세계조차도 자신이 살아온 생활의 똥에 불과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삶이라는 것의 본체는 그다지 고상하지도 고결하지도 않은 것임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먹은 것의 결과가 똥이라는 것을 알고 나니 그것들이 그렇게 더럽게만 느껴지는 것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해서 냄새가 덜난다거나, 불쾌한 기분이 유쾌해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럴 때 순한 마음으로 현실을 보아내는 일은 중요한 삶을 위한 약이 되어주었다. 그렇게 시간이 갔다.

사람이 자신의 정신을 놓아버리는 것은 정말로 무섭고 아픈 일이었다. 자신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뇌의 구조가 변하여 그렇게 되는 일이니 서서이 허물어지는 아버지를 바라보면서 어머니와 둘이서 나는 밥 먹고 똥 누는 일을 일상의 화제로 삼고 그 일에 몰두하면서 시간을 보내야 했었다. 생명체가 그 존재를 유지하는 데에는 정말로 중요한 일이었다.

인간이 인간에게 예의를 지킨다는 것은 이러한 상황에서도 필요한 일인 것 같았다. 아버지가 바지에 똥을 실수하실 때마다 나는 그렇게 속 깊은 딸은 아니었다. “또 싸셨어요!” 내뱉는 말이 희미한 아버지의 마음에 상처일줄 몰랐다. 어머니에게 “제발 쌌다고 하지 말고 눴다고 그래줘” 부탁을 하셨다고 했다. 그런 부탁을 충분히 마음속에서 들어드리지 못한 것이 아직도 죄송하다. 그래도 그채로 아침이 오면 해가 떴고 아침밥을 먹었고, 저녁이 오면 해가 졌고 저녁밥을 먹었다.

이렇게 시간이 흘러가다 보면 나도 죽을 때가 오겠지.. 그렇게 밥먹고 살다가 죽는 것이 인생이로구나.. 문득 허망했다. 그렇지만 삶에는 실상 그렇게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는 마음이 가벼워지고 홀가분해졌다. 누리지 못한 생활이나 이루지 못한 성취는 그렇게 삶에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더 중요한 것은 멀리 있는 남에게 친절하고 착한 것보다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게 잘하는 것이 더 어려운 일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렇게 살아내는 시간은 아프고 버거운 언덕이었다. 그렇지만 그 시간으로 해서 나는 이어지는 일상의 맛을 보고 그 맛을 즐기게 되었다. 일상은 돌아가고 있는 시간이고, 이어지는 시간이지만 지루하지만은 않은 까닭이 그 자체가 삶이고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당연한 삶이기 때문에 인간으로서 누릴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바탕이 되어주는 일이다. 그 단순한 일상의 땀 흘리는 맛을 보고나니 오히려 짜릿한 자극들이 버겁고도 귀찮게 느껴졌다.

댓글 2

  • 2009년 9월 4일 오전 10:06

    참 힘든 시기를 보내셨네요. 저는 이민와 있어서 친정아버지 암투병중에 아무런 도움도 못되고 친정엄마 혼자서 고생하신게 아직도 미안한 마음 가득 남아있는데...자식의 도리를 다하셔서 부럽기도 합니다.

  • 2009년 9월 4일 오후 1:02

    고생 많이 하신 울 누님..10년이란 세월을 병상에서 보내다 가신 어머님을 보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 자신과, 인간의 존엄성과 자존심이 무엇인지 많은 생각을 했었습니다. 산다는 것 그것은 정말 밥 먹고 똥 누는 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데..

│ 이 │이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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