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가장 원초적인 고향으로 어머니의 품을 그리워한다. 나 역시 그러하다. 아플 때는 어머니의 목소리랑 해주시는 음식들을 그리워하고, 그 목소리랑 표정들이 항상 그 자리에 있는 듯이 좋아한다. 나에게 어머니는 특별했었다. 그러나 긍정적인 의미만은 아니었다.
아들 없는 집안에서 아들처럼 든든한 딸이었던 어머니가 우리집에 시집와서 가장 중요했던 일은 아들을 낳는 일이었다. 그 시대의 여성들이 누구나 그러하듯이 그것은 생존과도 관련이 되는 아주 중요한 일이었다. 그러나 멀쩡하던 장남이 갑자기 뇌염으로 사경을 헤매일 때 간호하다 지쳤던 어머니에게서 나는 조산으로 불쑥 세상에 태어나고 말았다.
두 살 터울의 오빠는 동생에게 어머니를 빼앗길까봐 무척 심술을 부렸다고 한다. 아마도 머리가 좋아서 그랬을 것이다. 갖은 궁리를 다해서 못살게 굴었다. 사탕깡통을 던져서 내 머리가 깨져 피가 흐르기도 했다. 그런 맏아들이 잘못될까봐 어머니는 정말로 노심초사하셨고 그 정성은 맏아들 없이는 살수 없을 정도의 자식사랑으로 번지게 되었으니 두 살 아래의 내가 곁에서 어머니를 바라보면서 해바라기 사랑을 하기 시작한 것은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니었다.
늘 허전했고, 늘 사랑받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왜 어머니는 나를 사랑하지 않을까 늘 고민했었다. 어머니가 보시도록 편지를 적어놓기도 했었고, 일부러 눈에 띄도록 활달하게 굴기도 했다. 그 허기는 먹어도 먹어도 채워지지 않는 허기였다. 실제로 나는 그 먹성이 현실이 되어서 비만아로 성장했다. 어떻게 하면 어머니의 마음에 들까 고심했고, 어떻게 하면 어머니에게 인정받을까 고민했다. 그러려면 살도 빼고 예쁘게 굴어야 했었을까? 하지만 나는 오빠처럼 대접받고 싶어했다.
내 마음에 대한 어머니의 반응은 담벼락에 대고 계란을 던지는 기분이었다. 어느 이상 성장했을 때 나는 포기했다. 내 길을 떠나자..내게는 나만의 길이 있을 것이다.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길이 있을 것이다. 대학원에 진학을 했고, 전공을 바꾸었으며, 사고를 현실에 다가가도록 팍팍하고도 성취적인 인간이 되고자 노력했다. 아마도 잘 알지 못해서였지 스스로 아는한은 최선을 다했다. 열심히 공부했고, 열심히 놀았다. 이전엔 절대로 어울릴 수 없던 사람들과 어울려서 적응하려 애썼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여기서 벗어나면 마지막이야..배수진을 쳤다.
그렇게 아마도 몇 년의 청춘을 소비한 것 같다. 내 스스로 선택한 삶이라는 것 때문에 어떤 결과가 오더라도 감수하겠다는 혼자만의 독한 마음을 품고서.. 어머니는 아무것도 모르시는 채 자기 앞길을 스스로 가리는 똑똑한 딸을 두었다고 스스로 자부하셨던 것 같았다.
그러나 어느 순간 스스로 느끼던 자괴감은 나를 인간 쓰레기라고 여기지 않을 수 없었다. 자기 자신을 속이고 살아갈 수가 없었다. 이제금 아는 것은 사랑이 시작이 아니고 증오가 시작이기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그 귀결은 다른 도리가 없었다. 결국은 파국을 치닫고 세상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충동적으로 머금게 되었다. 거의 폐인이 되다시피한 딸 앞에서 어머니는 내가 네 대신 죽을 수만 있다면 죽어주고 싶다고 하시면서 눈물을 흘렸지만 나는 그것조차 믿지 않았다. 그렇게 황폐화되어 있었다.
그채로 나는 어머니 곁으로 돌아와 있었다. 그 상황에서 나를 받아주는 사람은 이 세상에 어머니 밖에 없었다. 나를 이해해서가 아니라 거의 동물적인 본능 같았다. 내가 자식이라는 것은 문화적인 것이 아니라 어머니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그런 끈끈함을 처음으로 맛보게 되었다.
가까이서 본 어머니에게는 늘 시급하고 어려운 문제들이 당면해 있었다. 현실을 직면하는 사람은 가족 중엔 늘 어머니 혼자 뿐이었다. 그 속에서 저 구석에 밀려있는 나는 당연한 결과였다. 어머니 가까이 다가가려해도 어머니에게는 언제나 우선적으로 처리해야하는 급한 일들이 산재해 있었다.
가정의 쇠락, 형제들의 결혼, 아버지의 병환과 죽음.. 결국 내가 오십 살이 되었을때야 나는 어머니와 둘이 남게 되었다. 내 몫으로 둘이 남게 된 나의 어머니는 팔십이 된 노인네.. 삶에 지치고 내게 기대어야 하는 약하디 약한 할머니에 불과했다. 그토록 오랫동안 어머니를 독점해보고자 내 맘속에 맺힌 말들을 해보아도 어머니는 알아듣지도 못하셨다. 내가 받았던 상처들을 이야기해보아도 어머니는 내게 맞장구쳐주고 수긍해주기 보다는 자신의 삶 역시 너무 버겁고 고달팠노라.. 내가 생각해도 더 이상 어머니를 비난하고 나를 피해자로 만들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 사회내의 그 시대 여성의 삶이 다 그러하다고 말들을 하지만, 본인에게 아무런 책임도 없다고는 할 수 없다. 그것은 그러하다. 그래도 보통 사람이 얼마나 자신을 단련해야 그런 상황과 환경들을 벗어나서 자아를 지니고 사람을 사람으로 보고 살아갈 수가 있는지 나도 뭔가 다시 나를 다져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오십살이 되도록 어머니를 바라보면서 해바라기 사랑을 했다는 것이 부끄러운 이야기일까? 그러나 이제 마음껏 다정하게 해드리고 곁에서 어머니가 떠나실 때 기꺼이 편히 가시라고 보내드릴 수 있을 것만 같다. 이것이 허망하다기 보다는 이제 내 삶이 시작이라는 생각이 든다. 조금은 늦었지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