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살 인생

2009. 8. 31. 오전 9:46:50

글자

   내 조카 지영이는 무척이나 나를 닮은 아이였다. 둘째로 태어나서 이미 다른 가족들에게 존재를 인정받고 있던 언니를 부러워하고 시샘이 많았던 아이였고, 사람에게 대한 욕심이 사나워서 누구나 독점하고 싶어하여 골머리를 앓던 아이였다. 그래서 뗑깡도 아주 잘 부리곤 하였다. 또한 뚱뚱한 체격에 먹는 것을 좋아하고 운동하기를 싫어하는 것마저 닮았었다. 제 나이보다 조숙한 체격에 멀쑥하게 자랐지만 감성적이고 열정적이어서 그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고 보듬어주는 것은 사실 버거운 일이기도 하였었다.

   피아노를 좋아했고,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고, 친구를 좋아했고, 기도하기를 좋아했고, 욕심이 사나워서 언니와 똑같으려 들어서 항상 갈등에 갈등의 연속이었지만 둘이서 함께 놀때는 또 나름의 질서가 생겨나서 놀곤 하던 아이였다. 따뜻한 아이였다.

   그러나 나이가 아홉 살이 되어서 첫영성체를 하게 되었을때, 갑자기 열이 나고 아팠다. 그저 감기가 심하려니 싶었고, 평상시처럼 적당한 꾀병도 있었으려니 싶어서 그대로 세례식에 데리고 가기로 했다. 내가 두 여자 조카애들의 대모를 서게 되었다. 그 아이가 제대로 몸을 가누지도 못하는 것마저 반듯이 서라고 잔소리를 해댔다.

   그러나 영세식이 끝나고 집에 돌아와서 바로 경끼를 일어키고 쓰러졌다. 가까운 병원에 119 구급대를 타고 응급실로 향했다. 고열에 바이러스 감염인 듯하다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바로 중환자실로 향했다. 그채로 하루에 두 번 가능한 면회 시간에 만나는 것 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이 사흘..가족들도 그저 바라만 볼 뿐이었다.

   내일은 쉬는 날이니 지영이 면회를 가리라 잠이 든 밤 갑자기 급한 목소리로 전화 연락이 왔다. 지영이가 죽고 있다고.. 죽고 있다니.. 달려가니 심폐소생술을 가족들이 올 때까지 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마지막으로 할머니가 도착하시자 목에서 관을 빼내고 심폐소생술을 멈추었다. 목에서는 피가 흘러나왔다. 심장과 폐의 염증이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 때문인데 그 바이러스의 정체를 밝혀내지도 못한 채 사흘만에 일어난 죽음이었다.

   모든 가족들이 허둥대었다. 아이 엄마는 담담히 살기 싫었니.. 눈을 내리깔았고, 아이 아버지는 침대 옆에 무릎을 꿇었다. 할머니는 어떻게 요즘 세상에 아이가 죽습니까? 그말만 되풀이하셨고, 나는 꼭 해줄 말이 있었다. 지영아 우리는 모두 너를 사랑했단다. 그 말을 꼭 해주고 싶었었다.

   그러나 세상은 산자의 것인지도 모른다. 사흘의 장례를 치르고 나는 다시 출근을 해야 했다. 수업에 들어가서 이야기를 해야 했고, 나의 일상과 일과를 해내어야 했다. 속이 에어지고 정말로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지만 그것을 다른 동료들에게 납득해 달라는 것은 지나친 요구라는 것은 알고 있다. 다만..다만.. 조금만 남의 불행이 자신의 기쁨이 되는 삶에 염증이 나기 시작했다.

   살아있는 사람들은 살아내어야 하는 것이다. 억지로 생각을 멈추고 억지로 현재를 바라보고 늦가을의 우울을 밀어내면서 지영이를 보내야만 했다. 그 아이는 그렇게 아홉 살 인생을 마치고 우리 곁을 떠나갔다. 떼쓰고 울고 고집부리고 먹고 웃고 떠들고 엄살부리고 뗑깡부리고 나서 홀연히 가버렸다.

예쁘고 싶어서 갖은 애교를 부리던 그 모습이 어른거리는데 이제 세상에는 없는 것이다. 화장을 해서 유골함에 담겨서 납골당에 머무르고 있는 것이다.

   돌아와서 곰곰이 생각하기 시작했다. 저 아이가 이 세상에 살고만 있다면 맨발로 산넘고 물건너서라도 찾아가서 데리고 올 수만 있다면 데리고 오고 싶었다. 너무 귀한 나의 조카..결혼 못한 나에게 조카는 나의 자식과도 같이 귀한 아이들이었으니까..그렇지만 지영이는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너가 버렸다. 그 강은 살아있는 사람과 죽은 사람 사이에 흐르는 그 강은 한번 건너가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면서 살아있다는 것은 무엇인가..생각해보게 되었다. 죽기 전 까지의 시간이 살아있는 시간이다. 그렇다. 죽기 전까지의 시간이 살아있는 시간이니 살아있다는 것은 무한한 일이 아니라 유한한 일이다. 그래서 종교를 통해서 무한한 생명을 꿈꾸거나 이승을 그리는 것이 아닐런지.. 싶었다. 적어도 죽어보지 않은 나로서는 그렇게 밖에 생각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죽기 전까지 시한부의 삶은 누구에게나 주어져있는 유한한 시간인데 그 시간동안 살아가는 것은 가능한 한 더 성의 있고 정성껏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닐런지? 그런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더욱 살아가는 일이 일상 속에서 자신을 충만하게 아끼고 타인을 배려하면서 충실한 삶을 만끽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말이다.

   산다는 것은 소중한 일이다. 죽음 앞에서 생각해보니 더욱 그러했다. 아홉 살 인생을 살다 가버린 지영이는 더 긴 시간들을 시들거리면서 억지로 마치 살아주고 있는 듯이 살고 있는 어른들에게 아픔을 주었을 뿐아니라 부끄러움도 안겨주고 떠났다. 살고 싶어서 유채색의 욕심들을 펼치고 싶어서 그 많은 여러 가지 귀찮고도 번거로운 일들을 조르고 떼를 쓰던 그 아이의 열정이 살고 싶다는 얼마나 순수하고도 따끈따끈한 인간의 삶에 대한 의지이고 삶에 대한 노력이었던지.. 때묻은 어른이 되어서 그 아홉 살짜리가 남겨놓은 그림과 사진들을 바라보면 아직도 눈물이 가슴에서 흐느낀다. 어려서 제대로 표현되어지지 않은 욕심들은 삶의 의지로 충분히 이어질 수 있는 것이었는데.. 이제 그 아이가 떠나간지도 오년.. 그러나 가족들의 마음 속에서는 지금은 중학생이 되었겠지.. 그채로 아직도 살아서 함께 지낸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다는 것은 정말로 정말로 슬픈 일인 것 같다. 이 말을 아직도 직접 들려주지 못했는데.. 지영아 우리는 모두 너를 정말로 사랑했단다.. 아홉 살 인생을 마치고 떠나간 지영이는 내세가 있다면 아마도 거기서도 성모님을 독차지 하려고 애쓰면서 사랑하고 지낼 것만 같다. 내세를 온통 유채색 세상으로 만들어 버리고 있을 것만 같다.

 


댓글 4

  • 2009년 8월 31일 오전 11:54

    세상에..너무나 안타까운 죽음이고 슬픔입니다. 뭐라 위로의 말도 생각이 안날 정도로...

  • 2009년 8월 31일 오후 12:54

    그냥 허락없이 노래 붙였습니다. 살아있는 사람의 가슴에 각인된 먼저간 사람의 흔적은 언제나 그렇게 살아있음을 부끄럽게 하는 일인가 봅니다.

  • 2009년 8월 31일 오후 8:45

    참 안타까운 이야기 입니다. 그 귀여운 조카가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겠네요. 조카아이의 명복을 빕니다.

  • 2009년 9월 1일 오후 12:25

    ......

│ 이 │이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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