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번 기일은 아버지가 돌아가신지 두 해째 된다. 아마도 아홉 살에 우리 곁을 떠난 조카와 만나서 재미있게 지내시고 계실 것이라고 우리는 농담을 하곤 하지만 사실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 멀지 않은 시간 사이에 두 번을 잃는 일은 정말 아픈 일이었다. 조카는 어려서 아깝고 애달픈 인생이라고 다들 슬퍼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마지막에 치매를 앓으셔서 많은 사람들이 이제는 떠나주십사 바라는 그런 시간까지 겪고 세상을 떠나셨다.
그저 치매의 노인네라 생각했지만 돌이켜보면 거의 일주일에 걸쳐서 가족들 하나하나에게 한 마디씩의 인사말은 남기고 가셨다. 자랑스러워하시던 큰아들, 건강을 조심하라던 작은 아들, 미안하다는 큰딸, 그리고 작은 딸인 나에게는 수발을 들어주어 고맙다고 눈을 마주하고 또릿하게 이야기 하셨다. 손자 손녀에게도 공부 열심히 하라는 부탁도 하셨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존재를 맏기던 어머니에게는 평생 안하시던 웃음 섞인 목소리로 한국말로도 못하고 영어로 “댕큐~” 그렇게 떠나셨다.
아버지의 마지막 시간을 지켜주신 것은 어머니 혼자셨다. 어느 정신으로 했는지 모르겠다고 하시면서 눈을 감겨드리고 씻기고 새 잠옷으로 갈아입혀 드렸다. 자식들은 그제서야 모여들었다.
병원에서 수의로 갈아입으신 아버지의 얼굴은 평안했다. 결국 두 손 모으고 관 속에 누워계신 아버지를 바라보면서 그래도 담담할 수 있었지만, 화장장으로 들어가서 불가마에서 나온 한줌의 재가 아버지라는 것을 받아들여야 하는 시간에 나는 소리를 지르면서 울음을 터트리지 않을 수 없었다. 거의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지르다가 손수건으로 입을 틀어막으면서 울음을 참아야 했다. 그리고는 묘지로 향했다.
묘지는 미리 준비가 되어있었다. 파여진 속으로 유골함을 묻고서 한 삽씩 흙을 퍼 넣기 시작할 때 이제는 유골조차 다시는 못 본다는 생각이 들어서 못 견딜 것 같은 눈물이 솟구쳤다. 혈연이 있는 사람들은 애끓게들 슬퍼했다. 당연히 함께 살아온 나는 마음이 많이 슬펐다. 초겨울 찬 땅을 파고서 화장을 해 한줌이 된 유골함채 묻고 돌아서면서 추운 땅에서 얼마나 추위를 타실런지 마음이 저려왔다. 그것은 살아생전에 함께 지내던 추억들이 아버지의 자리를 더욱 비어있게 만드는 것 같았다.
장례식의 번거로움으로 슬픔이 잊어 질런지.. 집으로 돌아와서 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하는 일은 어머니에게는 못 견딜 슬픔이셨다. 오랜 병수발에 지쳐서 어머니도 아버지가 이젠 떠나주기를 바라시는 줄 알았다. 그것은 결혼을 안 해본 나의 미련하고 짧은 생각이었다. 집으로 돌아와 텅 빈 자리를 느끼면서 어머니는 정말로 자신의 존재가 사라진 듯 울고 또 울고.. 그저 할 수 있었던 말은 배우자를 잃은 슬픔의 스트레스가 가장 크대요.. 위로가 될런지 몰랐다.
평생을 해로한다는 것은 전생의 아주 긴 인연이라고 한다. 그 관계의 내용이 친밀하건, 서먹서먹하건, 애증이건 서로가 어머니에게 아버지는 존재근거였고, 아버지에게 어머니는 존재근거였다는 것을 그제서야 알았다. 아버지를 잃은 나의 슬픔보다도 그렇게 평생을 살아온 두 분이 이렇게 헤어지게 되는 것이 곁에서 안타깝고도 슬펐다. 그리고 두 분이 함께 살아온 것은 두 분 모두의 안간힘을 쓴 최선이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신 묘지 속으로 들어갈 수는 없는 일이었다. 아무리 심부름시키기 좋아해도 대신 죽어줄 수는 없는 일..아무리 가까워도 자신의 삶의 몫은 스스로 살게 마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를 추스르시게 하는 일은 아버지가 내게 주고가신 숙제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것이 스스로 해내어야 하는 역할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가끔 성묘를 가면 동생은 곁의 산소까지 벌초를 해준다. 아버지가 심심하셔서 옆집 할아버지에게 분명히 말을 시키고 계실테니까 그 할아버지네 산소도 벌초해주면 좋지 않겠느냐고.. 그저 착한 마음이라기 보다는 가족들의 마음속에는 아직도 아버지가 그저 아버지의 자리에서 여전하게 살아계시는 것 같다. 그채로 살겠지..그채로 나는 늙어가겠지..
산소 앞에서 찬 땅에서 울적해하지 마시라고, 나도 곧 뒤따라 갈거라고 그렇게 이 얘기 저 얘기 시키시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부모를 떠나지 못한 채로 나이들어가는 나의 삶이 쓸쓸했다. 그렇지만 두 분이 그곳에 함께 계시게 될 거라는 것이 당연하듯이 나의 마음속에서 부모님은 언제나 그 자리에서 어떤 삶을 보호해주시는 언덕으로 남아 계시게 될 거라는 것도 이제는 알 것 같았다. 그래서 마지막까지 남아서 어머니를 보내드려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부모의 인연으로 만난 사람들이었지만 떠나실 때는 각자 자신의 삶 대로 가실 것이니.. 사람은 누구나 결국에는 혼자라는 것도 사실인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