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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독서와 복음에 공통으로 나타나는 단어가 있습니다.
‘제자’인데, 주님의 종과 유다 이스카리옷의 모습은
너무 역설적으로 드러납니다.
이사야서에서 사용된 히브리 말 단어는 ‘가르침을 받는 사람’
이라는 더 수동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제자로서 주님의 종은 하느님께서 자기에게 가르치시는 대로 받아들입니다.
그분의 가르침대로, 사람들을 격려할 뿐 아니라
매질과 모욕과 수모도 받습니다. 이 모든 것이 자기와 함께
계시면서 자기를 도와주시는 하느님의 뜻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였던
유다 이스카리옷은 스스로 제자의 신분을 저버립니다.
그가 예수님을 팔아넘기려 했다는 것은
이미 그분께 배우는 사람이기를 그만둔다는 뜻일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성경에 기록된 대로 떠나간다.”고 말씀하시는데,
떠나가는 주체는 예수님 자신이십니다. 그것이 당신의 길이기에,
떠밀려서가 아니라 스스로 수난과 죽음의 길을 걸어가십니다.
그렇지만 유다는 그 길을 따라가지 않고 오히려 거꾸로 갑니다.
죽임을 당하실 예수님 편에 서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예수님을 죽이려 하는 이들과 손을 잡습니다.
성주간의 성삼일 전례를 앞둔 우리는,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이
어떤 길을 가야 하며 어떠한 운명이 기다리는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주님의 길을 따라 뒤로 물러서지 않고 인내하면서
꿋꿋이 걸어가고 있는지, 아니면 예수님을 팔아
내 뜻을 이루려 하고 있지는 않는지 자문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의 길은 처음부터 십자가의 길이었습니다.
죽음을 맞게 되신 예수님께서는 유다를 제자로 삼으신 것을 후회하지도,
당신의 억울한 죽음을 불행으로 생각하지도 않으십니다.
저항하지 않으시면서 사랑에 호소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은 참으로 위대하고 고결합니다.
비참한 것은 예수님이 아니라
제자의 신분을 내던지고 그 길을 벗어나려 하는 유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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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매일 미사-
♬ 고통의 길 주님의 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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